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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처럼 사라지는 기억

햇살과 함께 사라지는 물안개

by 하루미래

"물안개는 곧 떨어질 망고나무 꽃처럼, 또는 사라질 꿈처럼 발밑에서 피어올라서는 내 머리카락을 적시고 허공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삶이 내게 가르쳐준 것 들]


예전 호주에 거주하던 때, 새벽에 출근하는 길은 항상 바빴다. 어찌 보면 하루 중에 가장 바쁜 하루였다.

새벽 4시 반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소리, 피곤한 육체지만, 일어나고자 하는 내 의지는 피곤함을 항상 능가했다. 픽업장소로 나가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태우고, 도시락을 사서 일터로 향하는 게 일상이었다. 매번 같은 장소는 아니기에 풍경이 달라질 수 있지만 방향은 비슷하기에 항상 같은 곳에서 정체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그 시간이 즐거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차량이 정체되는 그 시간이, 그 장소가 나에게는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물안개가 가득한 공원 잔디 위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왜 사진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지금 무척이나 후회하는 중이다.) 물안개가 가득한 날은 무척이나 더운 날임을 예고하기도 했지만, 그 물안개는 나에게 새벽의 이슬이 맑고 차갑다는 느낌과, 이른 아침 시간이 주는 풍경의 기쁨이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다는 특별함을 나에게 선사했다.


어스름한 새벽, 막 동이 터오는 시간, 아무도 없는 파란 잔디가 펼쳐져 있는 공원에 잔디 위로 구름처럼 떠 있는 물안개를 본 적이 있는가? 처음에 접한 물안개를 집에 와서 아내에게 설명해 줬더니 시큰둥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해 줬더니 별 반응이 없었다. 자주 보는 광경이었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몇 번을 보고 나니 아~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씩 마주하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잠깐식 즐거운 명상에 잠기곤 했다.


그 기억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 그 즐거웠던 명상 시간이, 차 안의 공기와 하루 일과를 동료들과 나누던 이야기, 그리고 시드니의 정체와 나 혼자 너무나 반가이 마주했던 새벽의 물안개 등..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기억이었다.


필사를 하면서 기억이 되살아났다. 밟아보지는 못했던 물안개지만, 내가 마치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움직이는 상상을 볼 때마다 했던, 시드니의 물안개를 깊숙이 처박혀 어디 있는지도 모를 기억 서랍 속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과거 시드니에서의 생활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즐거웠다.


힘든 이민자의 삶이었지만, 도와주는 지인들이 이었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친구들, 가족, 일이 있다. 그러나 시드니에서의 삶처럼 행복하지는 않다. 즐겁지도 않다. 왜 그럴까? 물안개를 보지 못해서? 그건 아닌 것 같지만 그런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은 좋지 않은 점이긴 하다.


그럼 이제 행복을 찾아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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