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책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나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 아니 살고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자유로운가?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익숙한 '공기'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구심을 가져 보지 않았다. 고마움은 가지고 있었지만, 왜 공기여야 하는지, 어떻게 공기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무엇이 공기와 나를 이어주는지 등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도, 시도해 본 적도 없다. 공기는 그저 자연스럽게 나의 일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유민주주의 시민으로 자라나며 '자유'는 당연한 나의 삶이었다.
최근까지 '자유'는 '공기'와 같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주제였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자유를 생각하고 사유하며 진정한 자유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 책을 읽고 있다.
이게 다 책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니 자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나열하고 있다. 그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자유는 경제적 자유다. 삶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원동력은 '경제적 자유'다라고 많은 곳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경제적 자유보다 말 그대로 '본질적인 자유'를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자유를 획득'했다. 내가 스스로 얻어낸 결과가 아닌, 선조들의 값으로 메길 수 없는 '희생'을 통해서 내가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질수록 생각도 많아진다. 그 생각이 많아지니 '자유'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그저 살아가는 것만이 자유가 아님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라는 것이 불편하다. 누군가가 대신 내 삶을 살아주면 좋겠다. 나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주고, 내가 생각해야 하는 것을 해주면 좋겠다. 귀찮게 많은 생각 안 하고 그저 주어진 일만 하면 좋겠고 누군가가 때가 되면 알아서 나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 그저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제일 좋겠다.
이런 게 자유로운 삶일까? 아니다. 이건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하나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바로 '고독'이다. 고독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 쌓는 지식과 거기에서 나오는 고독은 삶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준다. 자유는 개인인의 자아와 교양의 강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자아와 교양은 지식을 쌓음으로써 성장한다.
에리히 프롬은 <파시즘>을 예로 들었다.
16세기 중세시대 봉건제도에서 전쟁과 혁명을 통해 이뤄낸 자유라는 선물을, 19세기 독일은 자유의 과실을 내던지고 '전체주의'를 선택했다. 이유는,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고 견디면서, 더욱이 진정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함으로써 비로소 인류에게 바람직한 사회가 탄생하는 법이다. 하지만 자유의 대가로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독과 책임의 무게에 몹시 지친 나머지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손에 넣은 자유를 내던지고 나치의 전체주의를 택한다.
책 때문이다.
그냥 편하게 살면 자유로워지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생각하고 사유하고 고독을 통해 자아를 단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 자유를 찾아 계속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단계에 왔다. 비록 견디기 어려운 고독가 책임이 뒤따르더라도 끊임없이 자유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내가 바라는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