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문장론>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문장론>
앞전에 '독서는 사색을 위한 도구'라는 글을 썼다.
독서하는 이유가 뭔가를 얻기 위함인데,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색뿐이다.
옛 천재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들은 사색을 즐겨했으며,
오직 독서는 사색의 도구로만 사용했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은 누구나 쉬운 길을 선호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지나가기보다는
이미 생성되어 있는 길을 택한다.
사색도 마찬가지다.
책을 통해 작가의 사색을 쫓아가는 것을
내가 스스로 사색하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
눈앞에 놓인 가시밭길보다 작가의 발자국이 선명한
평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다.
그래서 '다독'이 위험하다고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한다.
사색은 현실 경험에서 찾아야 하는데,
독서는 가상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한 경험이 아닌,
작가의 경험으로 인한 간접적인 경험이다.
즉, 인공적인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쇼펜하우어에게 질문하고 싶다.
직접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책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들이 어느 순간 나의 경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만약 경험을 통한 사색만이 진정한 사색이 될 수 있다면,
책을 많이 읽을수록 작가의 사색만을 쫓는 사람이 된다면,
지금껏 수많은 사상가들이 읽은 책들은 무엇이 될까?
'사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에서 얻은 생각들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독'이 '사색'을 방해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독'또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나의 경험에 빗대어
나만의 생각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읽기를 위한 '다독'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많이 읽는다는 고양감은 책을 곁에 두는 좋은 동기가 되지만
너무나 많은 빛나는 문장들을 그냥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독' 보다는 '정독'이 좋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듯 하하다.
'다독'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독'하기가 힘들다.
요리도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한다.
어떤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잘하기는 힘들다.
독서와 사색도 처음부터 내 맘대로 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그저 읽고 또 읽는 수밖에 없다.
책에서 주는 지식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쉬운 길에서 조금 즐기다가, 어려운 길을 개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다독'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관문'이라 생각한다.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문장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