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9년 살았다 #4>
호주 농장에서 6개월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낡은 자동차를 하나 사서 농장을 출퇴근했고, 그 자동차 덕분에 다른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파티장소에 자주 갈 수 있었다. 또한 좁게 느껴졌던 시골동네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가서 호주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차는 폐차가 되었다. 애초에 잘못된 구매였기에 많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덕분에 자동차에 관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엔진오일도 직접 갈아보고 정비소를 찾아다니면서 자동차 관련 영어를 접할 기회도 있었다. 이래저래 돈만 낭비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호주에서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마지막 송별회파티는 잊을 수 없었다. 온동네방네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웃고 떠들며 물에도 들어가고,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준비해 온 음식들을 먹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웠던 장면이 너무나 생생하다. 내 나이 31세, 그때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하고 있던 친구들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스스로는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친구들과 어울리고 농장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다시 한국으로 왔다. 호주에서 열심히 전화기 너머로 설득한 와이프는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이었지만, 1년을 계획했던 호주생활이 8개월 조금 못 미쳐서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조금은 성장한 영어실력과 생생한 나의 경험담, 그리고 호주에서 본 앞으로의 비전등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설득했다. 그리고 결국은 승리했다.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있다가 미리신청해서 받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함께 호주로 떠났다. 사실 그리 맘이 편하지는 않았다. 좋은 모습으로 가기보다는 달러벌이 하러 가는 것처럼 보였으니깐 말이다. 그때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와이프와 함께 벌어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던 생활은 뭔가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 계기가 '호주워킹홀리데이'였다.
그렇게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 11월에 우리는 오히려 더워지기 시작하는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의 9년 호주생활의 첫 시작이었다. 시드니 도착해서 와이프는 어디서 길을 잃을 것 같은 아이처럼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그래도 먼저 경험한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긴장되는 입출국 심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영어권 국가에 처음 와보는 와이프에게는 모든 경험이 낯설었고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미리 나와있는 한국인 택시를 타고 지인 소개로 미리 구해두었던 숙소에 도착. <하나의 아파트에 8명이 거주하는 셰어하우스였다.> 와이프는 약간의 문화충격을 경험했지만, 나의 감언이설에 속아 시드니는 원래 그런 곳이라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시드니 첫 저녁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달링하버'에서 보냈다. 당시 부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과 사람들,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옆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영어의 향연, 느긋하게 걷고 있는 커플들과 반은 벗은 것 같은 조깅하는 사람들,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첫 달링하버를 경험하고 있는 관광객들.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던 첫째 날의 기억으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달링하버는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
내일부터는 생존게임을 시작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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