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불의 제안, 그리고 돌계단 위에서의 선택!

<호주에서 9년 살았다 #7>

by 하루미래

호주에서 한국사람들이 하는 일은

어느정도 정해져있다.

홀서빙,주방,딜리버리,

건설관련직종(페인트,타일,목수), 청소 등

당시에도 '호주나라'라는 사이트에

올라오는 구인구직 정보는

거의 90%이상이

위 직업군에 포함되었다.


내가 시작한 '이삿짐'도

많은 한국친구들이 하는 직업이었다.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라는

광고문구는 설렘을 안고 찾아오는

어린 워킹홀리데이 학생들을 유혹했고

그 유혹에는 학생이 아닌 나도 걸렸다.


2주일 정도 일을했다.

함께하는 직원들과도 친해졌고

영어를 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했다. 무거운 매트리스도

즐거운 마음으로 배달했다.


하지만, 딜리버리 업무는

주 6일중에 1~2일 정도였다.

나머지는 이사 업무였다.


이사 업무가 고된줄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강도가 엄청났다.

짧은시간에 짐을 옮겨야 하는데,

쉴틈도 없이 흘러가는 강도높은

3시간은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3시간의 성과는

3시간 시급, 그 이상도 없고

그 이하도 없었다.

그날은 그 3시간이 다였다.


뭔가 좀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또 한번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음을 어렴풋이

직감했다.


집으로 돌아가 와이프와

조촐하지만 푸짐한,

그리고 가격은 매우 착한(10불)

T-본 스테이크를 썰면서

급여를 계산해봤다.


와이프가 일주일에 버는 금액 680불

내가 일주일에 버는 금액 560불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한숨이 나왔다.

다음날 사장과 대면하기로 했다.


그만두겠다고 이야기 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하며

적어도 '와이프 보다는 많이 벌어야 한다'

라고 어필했다.

그랬더니,


'일주일에 700불' 보장해줄께.

일을 하던 하지 않던'


파격적이었다.

아직 누구에게도 그런 제안을

해본적이 없다면서, 자신도 이런

제안을 한다는게 놀랍다고 했다.


이유는,

적지않은 나이로 인한

책임감, 부족하지만 더 부족한

사람이 많은 관계로 부각되는

영어실력, 그리고 운전가능자.


고마운 제안이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게가지 못했다.

다음날 엄청난 놈을 만날지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도 생생하다,

시드니 Castle hill 지역,

큰집도 많고, 좋은집도 많았지만

강 근처에 있는 집도 많았다.

소파배드를 옮겼는데

정말 죽는줄 알았다.


waterfront-houses-along-the-woronora-river-in-sutherland-shire-sydney-australia-2E3AJ4A.jpg



시드니에 이런집이 더러 있다.

문제는 강에 가장 가까운 집에

배송을 하기 위해선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와야 한다.

가파를 돌 계단을 타고서...


무거운 소파배드와

가파른 돌계단,

살짝 더운 날씨와

미끄러운 비닐커버

그리고 2명...


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나

있을지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시드니에서 살면서

700불 이상 벌기가

힘들어보였다.


그래서 결정했다.

페인터가 되기로 했다.


시드니에 도착한지

거의 한달, 나는 앞으로의 여정을

써내려갈 '페인터'가 되었다.

아내는 손톱페인팅,

나는 하우스 페인팅이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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