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9년 살았다 #6>
<욥기 8장 7절>
처음이란 참 묘하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기대감.
처음 학교에 입학하던 날
처음 회상에 입사하던 날
처음 누군가를 만나던 날
우리 부부에게도 '처음'이 찾아왔다.
그것도 낯선 대륙, 호주에서.
나는 이미 경험했던 곳이어서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시작한 시드니는
전혀 다른 호주였다.
그땐 그저 '신기함'과 '외로움'이 섞여 있던
경험이었다면, 와이프와 함께하는 이곳은
'시작'의 기분이었다.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신혼,
힘들었던 한국생활
새로운 공기, 언어, 풍경 등등
모든 것이 함께하는 새로운 순간이었다.
마치 결혼식 마지막 행진으로
문밖을 나서는 설렘으로 가득했었다.
아내는 네일숍에 취직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원장님도 좋고,
동료들도 좋다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이삿짐센터에 취직했다.
고객들과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고 해서
'영어 가능자 우대'라는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자기야 나 이삿짐센터에 취직했어!"
- "엥? 거기서 영어가 필요해?
"정확한 건 가봐야 알겠지만, 영어랑 운전이 필요하대"
-"음... 우리나라랑은 조금 다른가 보네?"
웃으며 나눈 대화지만
사실 걱정이었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출근한 첫날,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과 동료들,
생각보다 어린 친구들이어서 놀랬다.
뭐, 다들 워킹홀리데이 친구들이니
당연한 상황이긴 했다.
사수와 함께 시작한 하루는
이삿짐이 아닌 '딜리버리'였다.
가구점에 들어온 주문,
매트리스 또는 소파 등을
고객의 집으로 운송대행 해주는 업무였다.
가구점, 고개들과의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약간의 영어소통이 필요했다.
"안녕하세요"
"목적지가 어디인가요?"
"매트리스 어디로 두면 될까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세요~"
등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내심 부족했다. 사실 농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영어를 사용했던 살아있는 영어가
그리웠다. 정해진 롤플레이처럼 하는 영어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절한 사수에게서 많은 팁을 전수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시드니 생활은 나보나 한참 선배.
배울 게 많았다.
난생처음 옮겨보는 거대한 매트리스를
들면서 떨어뜨리기도 하고,
낑낑거리며 엘리베터에 넣고 빼기도 했다.
모든 걸 처음 하는 경험이었지만,
사수는 친절하게 처음엔 다 그렇다고 격려하며
따뜻한 말을 건넸다.
그렇게 조금은 힘들었던
시드니 도로를 누비며 하루를 보냈다.
스트라스필드에서 미리 약속되어 있었던
네일 아티스트를 만나 함께 트레인을 타고
우리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창대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의 9년은 그렇게 시작했다.
네일숍과 이삿짐,
그리고 트레인 티켓 2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