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하늘 아래에서 드디어 색을 입히다.

<호주에서 9년 살았다. #8>

by 하루미래


‘페인트 신동이구만!!’


페인트 일을 시작한 지 이틀

최고의 칭찬을 들었다.


이삿짐 딜리버리 일을 그만뒀다.

700불의 제안에 솔깃하긴 했지만

열심히 해도 1000불을 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사장의 삶이

그리 부러워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계속하던 며칠,

주변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타일, 페인트, 용접, 청소 등등

한국 사람들이 하는 일중에서

가장 돈벌이가 좋고 장래성이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용접이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고,

영주권이 없이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청소는 가장 많이 하는 일이긴 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서 하지 않았다.


타일과 페인트가 있었는데,

타일은 일당도 좋고,

일도 많긴 했지만,

타일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망설여졌다.


페인트는 다칠 염려도 없고,

일당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일이 많았다.


호주는 한국과 달리

벽지 문화가 아닌,

페인트 문화이기에 일이 많았다.


셰어 하는 집 마스터의 소개로

페인트 업을 하는 분을 만났고

다음날 출근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첫날,

난생처음 해보는 페인트 일은

굉장히 낯설었고 신기했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페인트색이

묻어있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코끝을 자극하는 페인트 냄새,

매일 스테이크 먹을 것 같은

나무냄새 가득한 호주 가정집,

‘앉아!’라는 말보다

‘sit down!’ 말을 알아듣는

한국에서 늘 보던 골든레트리버

등등


전부 새로운 것 투성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열정가득이었다.


그래서 첫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지만, 뭐든 했다.

붓질, 롤러질을 시키지도 않았고

페인트통 근처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했던 날이지만

시킨 청소는 무조건 빨리 끝내고

페인트칠하는 곳으로 갔다.

뭐든 봐야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첫날, 기대 가득한 하루를 보냈고

이튿날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일이 바쁜 관계로

작은 롤러로 페인트 칠을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 손에 잡아보는 페인트 통과

작은 롤러, 실수해도 티가 나지 않는

창고 구석의 팬트리였지만

나의 첫 임무였다.


빠르게 칠하기보다는

어떻게 칠하는지 느끼고

잘 칠하도록 하는 부분에 신경 썼다.

집중해서 칠하다 보니

어느샌가 진회색으로 가득 찬

팬트리가 되어 있었다.


또 다른 일거리를 달라는 마음으로

사장에게 가서 다했다고 하니


‘뭐? 벌써 다했다고?’

‘네 다했습니다!’

‘가보자, 이상하게 한 거 아냐?’

‘....’


사장은 반신반의하면서

내가 작업했던 팬트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야~ 페인트 처음 해보는 거 맞아?’

‘페인트 신동이구만 이거~’

‘앗싸~!’


그저 웃음이 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했던가?

나의 마음은 춤추고 있었다.

빨리 다른 걸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잡일을 하면서

머릿속에서는 붓질과 롤러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렇게 마무리된 하루,

집에 와서 아내에게 신나게

오늘 있었던 일을 풀었다.


MSG를 조금 쳐가며

양념을 조금 얹었더니,

직업을 잘 선택한 것 같다고

자기가 더 난리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시드니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보냈다.


진짜 시드니의 삶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으며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었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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