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9년 살았다 #9>
호주는 하늘이 매우 예쁘다.
한국과는 다르게
좀 더 가까이에 있는 듯하고
청명하고 파란 하늘은
우리나라에서 보던 하늘색보다
색감이 더 선명해 보였다.
선명한 파란 하늘 캔버스 위에
하얀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드니 하늘은 한 번씩
멍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이른 아침
출근길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다리를 지나가는데
팔짱 끼고 있는 사람 뒤로
해가 떠오르는 듯해서
신기함에 찍었던 것 같다.
태양도 너무 멋지게
떠오르는 중이었고
돈 벌로 가는 출근길이라
더 좋아던 것 같다.
호주의 페인트는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에 종료한다.
5시 40분쯤에 만나서
현장에 도착하면
6시 30분, 조금 이른
하루가 시작된다.
시작하고 들었던
'페인트 신동' 소리는
나를 더욱 날뛰게 했다.
페인트 붓통만 보면
칠하고 싶어서 난리였다.
함께 다니는 기술자 아저씨가
가르쳐 준다고 설치지 마라고
했지만, 성격 급한 나는
붓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역시 기술에는 단계가 있다.
페인트 붓을 잡기 전에는
'롤러'관문을 넘어야 했다.
기본적인 롤러를 칠하지 못하면
페인트에서는 사람취급 안 해줬다.
'롤러 더 못 치는 게
무슨 기술자야?'
이런 말은 거의 속담처럼
페인트 업계에서는
불문율이었다.
벽, 천장, 문 할 것 없이
모든 게 롤러였다.
"좋다.
오늘부터 롤러왕이다!"
라는 생각으로 롤러에 붙었다.
다행히 페인트 신동이었기에
빨리 기회가 왔다.
작은 롤러를 생각하며
큰 롤러를 문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번
문질렀다.
모든 스포츠는 힘을 빼야 한다.
그래서 롤러에서도 힘을 뺐다.
'왼손은 거들뿐'
슬램덩크 강백호의 대사처룸
왼손은 방향만 잡고
오른손으로 열심히 밀었다.
'이야~ 롤러도 잘하네!"
'앗싸!!'
성공했다.
역시 나는 페인트 신동이다.
그렇게 나는 페인트를 배우며
적응하고 있었다.
시드니에 도착한 지 한 달 남짓
어느새 나는 여기에 적응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었다.
'스트라스필드'라는 한국인이 많은
공간에서 저녁에 와이프와 저녁을 먹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양주값만큼 비싼 소주를 한잔씩 나누며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호주는 아름답다.
3일이 지나면 조금은
퇴색될뻔해했지만
삶의 터전이라 생각하니
더 새롭고 애틋한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의 9년 중
처음 한 달이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