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관광, 여행과 고난

“인생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 그리고 여행은 고난과 어원이 같다."

by 오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류시화 시인.jpeg


“인생은 관광tour이 아니라 여행travel이다.
그리고 여행은 고난travail과 어원이 같다.”

류시화 시인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장소는 쉽게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 _ 사랑하면 다가오는 것들’ 중





여행지의 환상이 깨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반대로 생각지 못했던 여행의 환상을 가득 품고 돌아오는 경험도 종종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 경험의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첫 파리 여행은 악몽과 같았습니다.

단 며칠만으로 파리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감함’.

물리적인 크기와 문화의 다양성, 지나온 역사의 장면 등 여러 의미의 대도시인 파리를 얕본 대가를 톡톡히 치릅니다.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만 돌아보고자 했으니 준비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하루에 돌아보겠다는 패기,

에펠탑 방문 관광객 상대로 여행 기념 팔찌를 수갑 채우며 강매하는 불쾌한 경험,

환상과 낭만의 파리는 온데간데없고 아쉬움만 남는 파리의 하루하루가 쌓인 관광이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의 파리 여행과 파리 여행 도서 작업을 하며 그곳의 시간과 민낯을 조금은 더 경험하며 악몽은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까지요.


홍콩은 누군가 제게 여행지를 물어올 때면 처음으로 언급하는 곳입니다.

목표가 분명한 방문이었습니다. ‘가장 홍콩다운 모습을 담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일’이었지요.

프로젝트 준비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어 방문해야 할 곳들의 리스트는 100곳이 넘었고, 만나봐야 할 사람도 그만큼이나 많았습니다. 현지 로컬 분의 도움 또한 받으며 홍콩의 이 모습 저 모습을 방문 전부터 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홍콩에서 현지인들을 실제로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준비해 간 리스트들은 수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과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현지인들의 일상이 담긴 숨은 곳들을 발견했고, 그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알법한 관광지들은 일정이 축소되거나, 제외되었습니다.

덕분에 그들의 평범한 일상들을 함께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꽤 오랜 기간의 취재는 그곳에서의 일상으로 조금씩 변화하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배(스타 페리)로 출근을 하고, 노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붐비는 퇴근 지하철을 타고, 늦은 시간까지 야근도 하면서 말이지요. 매번 새벽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허기진 배를 채우러 무작정 숙소 근처에 찾아간 한 식당은 삼촌 같은 편안한 사장님 덕분에 단골 가게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돌이켜보니 일반적인 관광의 틀에 넣어본다면, 고난만 가득한 최악의 관광이었네요.


당시 한 인터뷰이의 말이 아직도 분명하게 가슴에 남습니다.

“홍콩은 홍콩입니다. 영국도 중국도 아닌, 그저 홍콩”

관광객들은 보통 홍콩의 화려함만을 그리며 방문하지만, 단지 한 부분일 뿐이지요.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 화려한 홍콩섬의 야경은 홍콩 현지인들의 느린 하루하루가 온전히 담긴 구룡 반도가 존재하기에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공간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을,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여주는 도시.

영국이 기획한 공간이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는 중국의 온도가 묻어있는 곳.

그래서 영국도 중국도 아닌, ‘그저 홍콩’이라는 홍콩 사람의 말이 특히 더 가슴에 와닿습니다.


조금의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일은 ‘여행’이었고, 여행은 또 제 인생의 한 챕터가 되었습니다.

어느 때고 홍콩을 떠올리면 환상과 설렘이 앞섭니다. 또다시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를 그리는 오늘입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오늘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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