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고 남편과 자식들을 잃고 노예로 전락한 트로이의 여왕 헤카베는 인간적인 고귀한 품성을 잃지 않는다. 딸 폴뤽세네가 분노한 혼령을 달래기 위한 제물로 바쳐져야 할 때 새로운 슬픔에 빠지나 적군이 감동받을 정도로 고귀한 모습을 보였다는 딸의 소식을 듣고는 자부심도 가진다.
그러나 내 슬픔이 과하지 않은 것은 네가 고귀했다는 말을 들어서다. 나쁜 토양이 신으로부터 기회를 얻어 좋은 수확을 내는 것이나, 좋은 토양도 필요한 것이 없으면 수확을 못 내는 법인데, 인간 세상에서 사악한 사람들은 사악할 뿐이며 고귀한 사람들은 고귀할 뿐, 우연에 의해서 변질되지 아니하는 본성을 가지고 끝까지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연약한 선> 마사 누스바움 767p
온갖 역경에도 인간적인 고귀한 품성을 지키고 있는 것은 헤카베 자신이기도 하다.
막내 폴뤼도로스가 믿고 맡겼던 친구 폴리메스토르에게 죽임 당한 걸 알았을 때 헤카베를 지탱하던 고귀한 품성은 파괴된다. 폴리메스토르의 두 아이는 죽이고 폴리메스토르의 두 눈을 뽑는다.
개로 변했다는 헤카베의 전설이 전해진다.
그레고르 잠자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며 출근길을 재촉하던 그레고르 잠자는 방문을 열 수 없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던 그레고르 잠자의 인생은 중단되어야 한다. 벌레로 변했기 때문에, 벌레로 변하고 나서야.
물은 강한 힘으로 덮쳐온다. 둑은 더 강한 힘으로 버텨야 한다. 둑의 힘만으로 버틸 수 없는 순간이 도래했을 때 둑은 형체도 없이 무너진다. 산산이 파괴된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파편 밑에 숨겨지고 개와 벌레가 남는다. 인간적인 테두리에서 벗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개나 벌레로 다른 무엇으로 변신한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어깨를 두들기자(누군가 두들기지 않더라도) 아직 인간이잖아. 와우, 대단한데.
연약한 선. 마사 누스바움. 서커스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