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도서관

by 북남북녀

먹구름 가득 한 날 도서관 창을 보며 앉아있다는 것은 행복이지. 그런데 더한 행복이 왔어. 어제까지도 비어 있던 신간 코너가 오늘은 꽉 차 있는 거야. 이런 어마어마한 행운이. 얼른 앉아 훑어보는데 알베르 카뮈와 헤르만 헤세의 디 에센셜 시리즈 두 권이 나란히 꽂혀 있어.(어마어마에서 ‘어마’ 하나를 더 붙여야겠어.)


무엇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흑색의 알베르 카뮈를 꺼내 들었어. 알베르 카뮈가 헤르만 헤세보다 좋다기보다는 헤르만 헤세는 열광했던 적이 있어 친숙하다면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 외에는 접한 적이 없어 낯설거든. 반갑습니다, 카뮈 님. 영광입니다, 카뮈 님. 인사를 꾸벅하고 싶었지.


카뮈 외에도 앨리 스미스의 <봄>(표지가 예뻐. 곧 봄이기도 하고)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다른 엄마들은 어떨지 궁금하니까) 안셀름 그륀의 <위안이 된다는 것>(반갑다고 할까, 오래전에 읽은 분이라서)도 손에 들었어. <장 크리스토프>도 예약해 두었기에 읽을 책이 많을 텐데,라는 걱정도 살짝 들었는데. 다 안 읽으면 어때. 지금 이 순간 빳빳한 새 책을 안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마음은 충만한데. 따뜻하고.


양육도 그렇잖아. 아이들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는 내 알 바 아니지. 자기들 가고 싶은 데로 가고, 하고 싶은 데로 하며 살겠지. 별일 아닌 것에도 깔깔깔 웃고, 아무 일 없는데도 신나 하고.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두 아이가 폭소를 터트리는데, 온몸에 있는 웃음을 다 터트리는 듯 웃는데. 너희는 뭐가 그리 재밌니 어이없어하다가도 그 순간 나도 정말 행복해지거든. 충만하고 따듯하고 행복하고.


양육이라면 한없이 길어 보이는데, 나는 순간 같아. 그 순간의 아이, 딱 그 순간같이 있으니까. 어제의 아이는 벌써 사라졌는걸. 기저귀 차는 아이, 우는 아이. 너 우유 달라고 얼마나 울었는데 하면 아이는 내가 언제라고 말하고 아니라고 하지.


여섯 살 아이는 오늘 웃으며 인사를 건넸어. 둘째 날 눈물 흘리고 셋째 날 쭈뼛거리더니 넷째 날 웃으며 인사를 건네네.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모든 것을 무서워하고 많은 것을 두려워하며 작년까지만 해도 내 곁에서 떼 놓으면 불안감으로 눈빛이 흔들리던 아이였는데. 다른 세상으로 한걸음 나가며 웃어. (엄마라는 존재는 이상하지, 이런 순간이면 기뻐해야 하는데 왜 안쓰러운 거지.)


믿지 않겠지만 평일 오전 혼자 도서관 온 것은 십 년 만이야. (첫째가 열 살이니까, 아마도)

위기의 순간마다 도서관에 앉아 있었는데. 엄마가 되어서, 엄마로 살아보고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도서관에 앉아 있으니 이상해, 꿈결 같아. 육아가 꿈결 같은지, 혼자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이 꿈결 같은지는 구별이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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