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꼭 억압이나 병적인 기원에서 유래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그저 옆에 있다. 친구처럼, 선물처럼. 가끔은 미소를 짓고 내 돌 같은 심장을 노크하면서.
인간을 깨우치는 천사의 목소리, 각성을 촉구하는 망치소리, 이유 없이 임하는 은혜, 은총.
책과 마찬가지로 꿈 역시 나를 벗어나서 사물을 보게 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나는 아니다. 꿈은 나와는 다른 인격으로 느껴진다. 삼위일체 신을 이야기하듯이.
조언하고 위로하고 깨부수고 세워주고 괴롭힌다. 혼란 가운데서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은 어떤 활동이든지 나를 위해서라는 거다. 마치 부모처럼.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살아내기를 꿈은 희망한다.
호의의 마음, 신이 우리를 굽어살핀다는 믿음, 만물은 선하다-돌멩이까지도-는 꿈과 연관된다. 눈에 띄는 악한이라도 공기 중 떠도는 에너지는 그가 살기를 원한다. 호흡을 통하여 그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사람은 호의 한가운데 있다.
아침이면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은 10만 원이었고 그 조차 마련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험한 직장 생활은 마음을 피폐하게 했다. 나라는 존재의 하찮음과 보잘것없음을 매일 매시간 알아갔다. 또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새롭게 시작한 입시 공부는 내 한계만 보여줬다.
빨간색으로 그어지는 문제 풀이에서 낙담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자료실을 돌며 한 아름의 책을 빌려 글자만 읽어댔다.
잠이 쏟아져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있을 때 (잠들지 않았다는 의식이 있었다. 도서관 소음이 여전히 들리고 있었기에. 각성과 수면 사이 그 어디쯤이 아닐까 한다.) 잔잔하고 신비로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도서관 허공에 사진들이 지나갔다.
앨범에 담긴 흑백사진에는 남성도 여성도 있었다. 저게 뭐지, 뭘까 뚫어지게 쳐다봤다. 몇 초 후 다른 사진으로 넘어갔기에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다섯, 여섯 명쯤의 사진을 봤을까,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로 한 문장이 흘러나왔다. 그 문장은 기억하나 밝히고 싶지는 않다. 단어 하나만 밝힌다면 ‘아침’이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분명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불안한 상황에서 꾸게 되는 히스테릭한 꿈으로 볼 수도 있을 테고, '하찮다'는 것을 보상하는 소원 성취의 꿈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꿈은 어떤 전형성을 갖추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도 개인적이고 다양하고 틀에 맞지 않는다.(꿈은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스스로 움직이는)
앨범 속 사람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사람들의 정체와는 상관없이 내게는 ‘가야 할 길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시원한 생수를 들이킨 느낌이었으며 희망이 샘솟았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으며, 잘 될 거라는 이유 없는 자신감이 상승했다. 이것은 뇌 속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변화였다. 생기가 흘러넘쳤다.
'숨 쉬는 공기조차 호의를 보인다. 세상은 생명을 사랑한다. 세상이 내게 호의를 보이는 만큼 나 역시 호의를 보여야 하며 세상이 나를 인내하는 만큼 나 역시 세상을 인내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마음 안에 자리 잡았다.
지금도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사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최후의 사진이 어떻게 찍힐지 알 수 없으나 앞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