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가져오는 것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육아를 생각하며 읽었으나 노예제도, 문명, 사회 구속, 내적 각성에 이르기까지 묵직한 울림을 간직한 책이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소년 허클베리 핀과 도망 노예인 흑인 짐의 자유를 향한 여정
뗏목을 타고서 경험하는 일들이 허클베리 핀의 정신적 각성을 돕는다. 도망 노예인 짐을 원래의 자리로 보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느끼면서도(양심의 가책) 허클베리 핀은 자신이 지옥에 가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 시대 백인 문화에 등을 돌린다. 이것은 이유 없는 반항이 아니라 짐과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눈물 흘리는 짐의 모습을 보며 허클베리 핀은 흑인 역시 백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짐을 몰래 팔아버리고 자신을 속인 사기꾼들이 사람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장면에서도 허클베리 핀은 잘 됐다는 마음을 품기보다는(개인적 원한에 치중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잔인함에 놀란다. 살인자들이 처한 곤란한 상황에도 감정이입을 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어른들이 보기에 허클베리 핀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교양이 부족한 아이지만 누구보다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다.
이 책을 육아서로 대한다면(마크 트웨인은 이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자는 추방할 것이라는 경고문을 붙였으나) 아이들의 모험을 막고 혼내는 무리에 속하는 샐리 아줌마나 폴리 이모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존 질서를 수호하며 한쪽 눈은 감고서(문명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을 질서에 편승시키기 위하여 교육에 신경 쓰는 어른. 샐리 아줌마나 폴리 이모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통제한다. 안전과 보호의 측면에서도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질서에 편승하여 어른 같은 삶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 본연의 삶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톰 소여는 톰 소여의 삶이 있고 허클베리 핀은 허클베리 핀의 삶이 있다. 본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기존 문화나 질서를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허클베리 핀이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흐르는 것은 내적인 물결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을 듯싶다. 모험을 통해 허클베리 핀이 깨달아가는 것은 기존 질서나 문화, 문명과 거리를 두는 내적인 흐름이다. 허클베리 핀은 모험을 통하여 자신으로 사는 법(연기하는 어른들의 삶이나 기존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서로에게 이유도 모른 채 총을 드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에서 거리를 두며)에 한걸음 다가섰다.
교육은 한 아이를 질서와 통제 안에 안전하게 가둔다는 뒷면도 존재하는 싶다. 더 깊은 교육이라면 아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허클베리 핀이 허클베리 핀으로 살 수 있는 ) 발견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허클베리 핀은 자신을 교육하려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들의 안전하고 안락한 집으로부터 도망친다.)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에서는 불가능할 듯싶고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처럼 자신이 이끌리는 대로 모험을 하며 성장해 가야 하는 부분이 아이들에게는(물론 어른도) 분명히 있는 듯하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자극하는 사건과 활동에 이끌리며 두렵거나 불안한 요소들은 회피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일반적인 환경 이상으로 인간의 인격을 만들어나간다. 물론 경제적 문화적 조건에 따라 재능을 발전시킬 기회는 달라지며, 환경에 내재된 지배적인 가치와 사고방식을 물려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을 형성하는 건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자신의 경험들이다. 그런 경험들은 우리를 삶 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244p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밀레니엄 시리즈 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