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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Jan 17. 2024

무심하게 정신없이

<분노와 애정>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 됨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고 안 빌릴 수가 없었다. 엮은이 모이라 데이비는 엄마 됨을 다룬 문학작품이 부족한 이유로 엄마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엄마 됨을 다룬 문학작품이 부족하다면(부족하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으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 가치에 비하여 하찮은 일의 연속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들의 이야기는 자아실현 한 화려한 인생과도 거리가 있고 재테크에 성공해 선망의 시선을 받는 삶과도 멀다. 엄마들의 노동에는 보수가 없고 감정의 소비는 최대치를 기록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똥 닦고 밥하고 청소하고 ) 의미를 찾아야 한다. 쓸데없는 여편네, 할 일 없는 아줌마, 밖에 나가 뭐라도 좀 하지라는 폄하의 시선을 견디며 식충이라는 자책도 벗어던져야 한다.


워킹맘의 고충이 외부로부터 라면 전업맘의 고충은 내부로부터다. 소소한 일상의 곤란함, 생산적이지 않다는 시선, 명함이 없는 삶(사회로부터의 고립)


우리는 어느 정도 레지스탕스다. 해야 할 일이 끊이질 않아서 생각을 분석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잠깐의 깨달음만이 허락되며, 이것마저 방해받지 않는 짧은 틈을 타 빨리 기록해야 한다. 79p

대학에서 일하는 몇 명 엄마들을 빼면 모두가 후줄근한 바지와 오래된 셔츠를 입는다. 103p

젖을 다 먹인 후 벤저민을 다시 유모차에 태웠다. 이번에는 엎드린 자세였다. 아이가 다시 잠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공갈젖꼭지를 아이의 입에 물렸다. 그리고 몸을 녹이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잠에서 깰 위험을 감수하며 방한복을 벗겨야 할지, 아니면 아이가 지나치게 더워할 위험을 감수하며 그냥 둬야 할지 고민했다. 이처럼 자잘한 문제에 관심을 쏟는 것이 내 유일한 일이 되었다. 109p

만약 여성 예술가가 엄마로서의 활동은 하찮으며 삶의 주요한 문제들과 아무 관계가 없고 문학의 훌륭한 주제들과도 무관하다고 믿도록 배워왔다면 반드시 그 배움을 버려야 한다. 그러한 교육은 여성 혐오적이며 사랑과 탄생보다 폭력과 죽음을 더 선호하는 사고 및 감정 체계를 보호하고 영속화한다. 게다가 그건 거짓말이다. 220p

모이라 데이비 엮음 <분노와 애정>


저녁 먹은 후 설거지 중이다. 소파에서 놀던 아이가 타코야끼 장사를 봤다고 한다. 캄캄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에 타코야끼가 먹고 싶다고 한다. 그릇을 헹구며 나는 말없이 아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건조대에 그릇이 가지런히 놓이자 앞치마를 벗고 타코야끼를 사러 나갔다, 충실한 하녀처럼. 무릎 부위가 헐렁해진 조거 팬츠에 긴 외투를 걸치고서


여덟 개의 타코야끼를 아이 둘이 나누어 먹는다. 옆에서 물을 떠다 주며 내 입에는 한 개의 타코야끼도 넣지 않는다.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엄마, 다음에는 두 개(박스) 사서 하나씩 먹을 래. 두 개(박스) 사줘. 그래, 다음에는 두 개 사자 고개를 끄덕인다.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내 입에 들어가는 타코야끼 보다 아이들의 입에 들어가는 타코야끼가 좋다는 것 외에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어려운 일 앞에 섰을 때에 이런 기억들이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내적인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서.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의 시간은 이렇게(무심하게 정신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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