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상황이나 시인의 생과는 상관없이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는 머릿속에 자리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시구처럼 자연스럽다. 뉘우칠 것이 많았나. 다른 이에게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랐으나 의도치 않게(의도를 품고) 상처 준 이도 있겠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만 점 부끄럼이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서 일 수도 있다. 기억도 희미한 유년기로부터의 그늘
마키노 고타로가 아버지가 임종하는 시간에 아버지의 병상을 피하고 악랄한 짓을 벌이겠다, 마음먹는 이유는 어린 시절에 있다. 엄마를 버리고 자신을 방치한 아버지.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을 때는 아내에게 아버지가 죽었다, 고 말한다. 아버지에 대한 크고 깊은 원망은 마키노 고타로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그 역시 불륜을 저지르고 아름다운 아내와 이혼하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는 죽은 존재가 된다. 동료들에게는 무례한 사람으로 되는대로 생활하며 악취를 풍기는 인간으로 마키노 고타로의 생은 이어진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어머니와 생활하며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기 유키요는 사랑에 집착하다 살인자가 된다. 어린 시절 이후로 나기 유키요의 감정은 메말라있었고 이 감정을 살아나게 한 대상에 집착하다 칼을 휘두른다. 집착을 버리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애도하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깨닫기는 하지만
유년기의 그늘로 온전치 않은 삶을 이어가는 마키 고타로와 나기 유키요는 애도하는 사람 사카쓰키 시즈토와의 만남으로 이전의 삶에서 돌아선다.
‘어떤 사람을 사랑했고 어떤 사람에게 사랑받았는지 누가 어떤 일로 감사를 표했는지’가 본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카쓰키 시즈토 역시 유년 시절에 목격한 죽음에 영향을 받았다.
죽음의 장소를 차별 없이 찾아가 애도하는 사카쓰키 시즈토의 (신성한) 행위가 유년기의 그늘에 붙들려 있는 마키노 고타로와 나기 유키요의 생에 끼어들어 현재 삶을 부수고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세운다.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는 어떤 일들을 받아들인다면(무너지는데 저항은 따르겠으나) 변화는 가까이에 있다는 것
나는 조금 뉘우쳐야 할지 모른다. 무얼 뉘우쳐야 할지는 정확하지 않으나(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내 삶이 그늘로 견고하다는 증거겠지. 나 역시 잘못했겠으나 세상 역시 친절하지 않았다는 진실과 변명 사이 그 어디쯤) 햇빛 한 자락 들어설 수 있는 틈은 허용하고서
*서정주 <자화상>
*윤동주 <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