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다는 건 시계를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함을, 어떤 순간에 앞서 완수해야 할 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재닛이 태어났을 때 죽어야만 했던 그 애나가 지금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오늘 오후 나는 방바닥에 앉아서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정확히 한 시간 후에 냄비에 채소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빛의 느낌을 보니 저녁이 되었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의 거주민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실감한다. 도리스 레싱 <금색 공책 2> p267
딸 재닛이 기숙사 학교에 입학한 후 저녁 시간의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빛의 느낌을 만끽하는 애나 울프
희부옇게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계란 간장밥이 좋을까, 햄 볶음밥이 좋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마요네즈와 케첩이 들어가는 토스트가 나을까 엄마로서의 자각과 함께 가사노동이 시작된다. 나라는 인간은 숨어지고 차분하고 다정한 자상하면서도 냉철한 엄마로 서 있기 위한 사투가 애쓰지 않더라도 시작된다. 매일 해가 떠오르듯이 당연하게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가사 노동이 포함된 글을 읽고 싶었다. 찾아 헤맬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를 읽고 도리스 레싱에 관심이 생겨 <금색 공책> 읽기를 시도하니 가사 노동뿐 아니라 육아, 모성, 정치, 실의, 좌절, 혼돈, 절망, 여성, 남성, 광기, 파괴, 폭력, 인종, 계급, 방황, 인습, 제도까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성장이란 결국 자기 자신의 고유하고 엄청난 경험이 실은 누구나 공유하는 것임을 깨닫는 일’이라고 작가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좌절하고 시대의 광기를 경험하고 싱글맘의 생활을 하며 남성과 엮여 상처받는 애나 울프의 자신을 찾는 또는 벗어난 결과물이 <금색 공책> 일 듯싶다. 많은 것이 부수어지며 건져 올린 이야기들의 파편에는 그 당시 사람들이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한 기록이 포함된다. ‘공산주의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순정한 꿈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에 나 역시 공산주의가 자유를 빼앗는 적의 무리로만 인식되어 있다는 것이 떠오른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힘차게 부르던 전쟁 노래가 생각나며 이분법적이고 인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항하지 않는 사람에 속한다는 것을
삶이라는 것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고 느낀 순간을 떠올려 보면 내리쬐는 햇볕이 있다. 강하고 힘 있는 낮 빛이 아니라 저무는 저녁 빛이다. 힘없이 내려앉는 톤 다운된 빛. 일어나면 어지러워 며칠을 누워만 있었다. 아쉬운 건 놀이였다. 눈 뜨면 밖으로 나가 뛰어놀았는데 다른 아이들의 노는 소리를 들으며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골목길, 갈 데 없는 바퀴벌레만이 벽에 붙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가만가만 벽을 짚고 걷다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금 간 회색 벽이 등에 차갑게 닿았다. 이것이 삶이구나, 조그마한 아이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칙칙한 저녁 해를 얼굴로 받고 벽이 내어주는 냉기를 품으면서. 어지러움에 눈을 감으니 둥그렇게 흰 별들이 떠다녔다. 까무러칠 듯한 정신으로 별을 세며 앉아 있었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기숙사 학교의 교복을 입는 것에 저항하지 않는 딸 재닛에 놀라워하는 애나 울프를 보며 떠올린 것이 삶이 거창하지 않다고 느낀 순간이라니, 순응주의자의 책 읽기란
틈틈이 <금색 공책>을 읽었다. 휴일이 겹치며 아이들이 일주일간 학교(유치원)에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