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하와를 필요로 한다. 아니, 아담은 몰랐겠으나(처음부터 혼자였기에) 그렇다는 것을 신은 알고 있었다. 아담이 잠든 후에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아담의 짝이 될 하와를 창조하는 신. 나는 아니지만, 내가 아니기에 친밀감을 나눌 누군가를 인간은 필요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스토너와 이디스의 결혼은 실패다. 스토너의 일정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내 이디스는 그 자신의 성장과정이나(감시하는 통제적인 부모) 계급의식에 묶여 스토너와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이루지 못한다. 이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대인관계에 서투르다는 스토너와 이디스의 공통점이 있었으나 스토너가 문학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학자의 길을 무난하게 걷는다면(동료 교수 로맥스로 인하여 어려움은 있었으나) 이디스는 어디에서도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에 어떤 변화를 시도해 보지만 외적인 변화에 그쳤을 뿐 내적인 변화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자신을 발견하는데 실패한 이디스는 그 모든 불행의 이유를 남편 탓으로 여기는 듯하다. 앙심을 품은 이디스는 남편과 딸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견딜 수 없다. 사이좋은 부녀 사이를 억지로 갈라놓고 스토너의 서재를 다른 곳으로 옮기며 창고처럼 스토너의 서재를 사용한다. 불행한 이디스는 딸, 그레이스에게도 감시자이자 통제적인 엄마가 되며(이디스의 부모처럼) 히스테릭한 면모를 더욱 내보이며 그레이스를 자신과 같은 불행으로 흐르게 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사람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의 대비로 읽었다. 인생의 어두움을 감당하며 걷는 사람과 다른 곳으로 전가만 하는 사람의 차이로도.
스토너가 각성해서 억압의 구조를 빠져나오기를 바랐으나(사랑하는 여인을 포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딸 그레이스는 지켜내기를) 책은 억압을 살아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억압 역시 세상의 일부이기에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신의 의도대로 친밀감을 누리며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도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아도 후회가 느껴지지 않았다.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햇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주름 없는 젊은 얼굴처럼 보였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스토너> p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