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의 말
자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나 내게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조금도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 전혀.
로맥스가 스토너를 괴롭힌 이유는 질투일 수 있다. 아름다운 아내, 커다란 집, 교육자로서의 자질, 멀쩡한 신체. 로맥스는 장애를 입고 태어났고(“왼쪽 어깨에서 목을 향해 작은 혹이 솟아 있고, 왼팔은 옆구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상반신이 두툼하고 구부정해서 항상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P128) 문학을 발견하며(“그는 길고 긴 낮과 밤을 방에서 혼자 보내며 자신의 일그러진 몸이 강요하는 한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다가 점차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p137)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로맥스의 비틀어진 신체에 대해 스토너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외형을 보기 보다 로맥스의 능력, 자질을 보며 그에게 호감을 가진다. 스토너의 호감에 로맥스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지만 동료로서 둘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다. 로맥스가 이성을 잃고 스토너를 공격하게 된 계기는 찰리 파커라는 허장성세적인 인물로 인해서다. 찰리 파커는 여러모로 부족한 학생이나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자신의 불구를 이용하여 그 부족함을 메꾸려 한다. 학생으로 좋은 자질을 보이지 않는 찰리 파커에게 스토너는 원칙대로 낙제점을 주지만 로맥스는 신체장애자인 찰리 파커에게 연민을 보이지 않는다며 스토너를 비판한다. 스토너에게 대학은 무자비한 세상 속에서 도피처 같은 곳이기에 세상의 기질이 묻어나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찰리 파커를 두고 볼 수 없다.
찰리 파커를 두고 스토너와 로맥스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며 대립한다. 스토너와 로맥스는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문학을 발견하며 변화된 것도 유사하나 스토너는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지 않는다. 세상의 입맛에 따라 자신을 변형시키지 않으며 폭력, 무자비함, 인기, 야심 같은 것들로 타인을 해하는 개자식이 되고 싶지 않다.
신체적 결함으로 약자처럼 보이는 로맥스는 세상이 원하는 것들에 부합한다. 순서대로 라면 스토너가 학과장으로 임명되어야 했으나 총장에게까지 미치는 영향력으로 로맥스는 학과장으로 임명된다. 로맥스를 따르는 무리(인기)도 많다. 어떻게 보면 라이벌일 수도 있는 스토너를(교육자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스토너를) 로맥스는 찰리 파커일을 계기로 고립시킨다. 로맥스는 학자로서의 능력도 출중했으나 세상인으로서의 자질도(스토너에게는 부정적인 자질) 충분하다.
로맥스의 스토너에 대한 공격과 술수에 스토너는 그런 것들에는 전혀 신경 써 본 적이 없다며 무식한 개자식이라는 말을 보태어 로맥스에게 돌려준다. 스토너는 교육자의 길을 발견한 뒤 승진, 이익, 인기 같은 것들에 연연해 본 적이 없다. 예술가처럼 몰입하며(“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며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검고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씨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 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 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 시작했다.”p157)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길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마지막까지 공격이고 흉측한 암세포 덩어리였다 하더라도.
로맥스의 일그러진 신체가 세상을 상징한다고 한다면 일그러진 세상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개인을 공격한다. 일그러진 세상 속 개인은 쪼그라들고 납작해지며 파괴된다. 스토너의 아내 이디스처럼. 세상의 시류에 맞춰 장식품처럼 키워진 이디스는 끝내 자신을 찾지 못한다.
스토너가 내면과 세상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개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이디스는 내면과 세상 사이에서 찌그러졌다. 이디스가 원하는 중심부에 가까운 삶.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영향력을 미치는 삶에 다가서지 못했다. 변화에 실패한 이디스는 남은 에너지를 가족을 공격하고 통제하는 데 사용한다. 스토너는 성인으로 이디스의 공격을 방어하지만 그레이스는 엄마 이디스의 영향력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엄마는 제가 인기 있는 아이가 되길 바라셨어요. 뭐...... 제가 인기가 있기는 했죠. 하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전혀
p347
이디스와 로맥스는 세상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 로맥스는 성공적이고 이디스는 실패적이었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을 뿐(아버지와 잘 지내며 만족하는 딸을 보며 이디스는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인기가 없기 때문에 딸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주는 어둠에 잠식당한 사람은 객관적 현실을 보지 않는다. )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그레이스는 세상(엄마)과 자신의 본성(내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살아간다.
그레이스는 해가 갈수록 술을 조금씩 더 마셔서 공허해진 자신의 삶에 맞서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하루하루를 조용히 살아갈 터였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p348
세상과 선한 본성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젊은 세대를 바라보며, 증오와 의심이 광기가 휘몰아치는 나라의 병든 모습을 지켜보며 스토너는 자신이 발견한 빛을 따라 묵묵히 걷는다. 비틀어지고 일그러진 세상 앞에 스토너는 말한다.
“자네는 무식한 개자식이야. 나는 자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나 내게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 전혀.”p356
*<스토너> 존 윌리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