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장례식

by 북남북녀

아빠가 쓰러졌다. 두 번째다. 응급실로 뛰어간다. 멀리 아빠가 보인다. 병원 일인용 침대에 코에는 산소 기구를 붙이고 침대 난간에 소변 주머니를 달고 앉아 있다. 얼굴이 시커멓다. 아빠가 작아 보인다. 아주 작게 쪼그라든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수술하고 나가. 수술 같지도 않게 간단한 시술이래. 언니와 나는 아빠를 설득한다. 수술받을게. 근데 시골에 한 번만 다녀오자.

큰아버지가 간단한 다리 수술이라는 것을 하다가 그대로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다. 아빠는 수술은 사망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시골에 한 번만 다녀오고라는 말과 그 말을 하는 아버지가 처연해 보여 고개를 끄덕인다.


퇴원 후 아빠는 시골에 가지 않는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몸이 좋아진다.(좋아진다고 말한다.) 부모님 두 분 다 병원에서 사망한 친척을 봐서 병원 진료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약을 타러 병원에 다닌다. 아빠가 불편한 게 덜하고 괜찮다고 해서 한시름 놓는다. 가끔 가서 만나는 아빠는 괜찮아 보인다. 심장판막에 이상이 있다는 아빠가 언젠가는 수술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해서 아낀다. 십만 원 드릴 거 오만 원 드리고 선물도 작게 산다. 남들 다 있는 금가락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엄마 말에 결혼반지가 없는 두 분 하나씩 맞춰드릴까 하다가도 앞으로 병원비가 꽤 들 텐데 보류한다. 부모님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고 형제들이 나눈다 해도 입원비와 수술비가 꽤 들 테니까. 아빠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수술하자 하겠지 기다린다.


한파가 몰아닥치는 어느 겨울날, 아빠는 세 번째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함께 살던 동생말로는 세탁기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구급차를 불렀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응급실이야, 울먹이는 동생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 나가려고 점퍼를 입는다. 그냥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듣지 않더라도. 세 살 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어두워진 길을 걸어 지하철을 탄다. 앉을자리가 있던가. 없었던가. 피곤해서 눈을 감는다. 뭔가 흘러내린다. 입 주변에서는 뭔가 돋아난다. 따끔따끔.


장례식장에서 입 주변에 돋아난 바이러스는 슬픔을 대변한다. 입에 작게 돋아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등을 쓸어준다. 아이고, 입술이 그게 뭐니.

바이러스는 편리하다. 아무 말 안 해도 아무 행동 안 해도 사람들은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행동한다. 아이고 저런.

정작 내 감정은 저 밑으로 가라앉아 손댈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났는데. 깨질 듯한 두통만 가지고 있었는데. 장례식 내내 있던 것은 두통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통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염을 하는 장소를 처음 들어간다. 아빠니까, 죽은 사람이 내 아빠니까 피할 수 없다. 끌려가듯이, 어쩔 수 없이. 아빠만 아니면 어디로든 피할 수 있을 텐데. 아빠. 내가 아빠니까 들어온 거 알지. 나는 할머니 장례식도 안 간 사람이잖아. 뭐 이런 거에 슬퍼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사람이 모두 그런 거지. 혼자 죽나, 다 죽는 거지. 그 뻔한데 안 가는 사람인 거 알잖아. 돈은 보내더라도. 아빠니까 이런 곳도 온 거야. 잘 기억해두라고. 장례지도사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아빠 주위를 돌라는데 할 말이 없다. 그냥 돈다.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는 나인가, 다른 사람인가. 어쨌든 돈다. 돌라니까 돈다. 할 말이 없어도.


검은 옷을 입고 손님을 맞는다. 아는 사람이 오면 일어나 인사하고 이야기도 나눠야 하는데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는다. 구석진 곳에 가만히 앉는다. 언니들이 바지런히 움직이니 괜찮다. 형제가 있는 게 좋다. 이럴 때 가만히 있다니 축복이다.


남편에 의해 연락받은 시댁 식구가 왔을 때 내 유일한 손님을 맞으러 일어선다.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돌아가셨니 흔한 질문에 눈물이 줄줄 흐른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원래 잘 울지 않는 사람은 그렇다. 잘 울지 않아서 한번 눈물이 흐르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안 울고 그래서 더 멈추지 못한다. 악순환이다.


고여 둔 눈물을 글로 나타내면 가벼워진다. 글로 흐른 눈물은 밖에 있어 더 이상 나를 흔들지 않는다. 글은 격한 파도를 잔잔하게 한다. 아니까 쓰지 않는다. 버틴다. 떠오르는 것들을 가라앉힌다. 고통이 끝나는 것은 불경한 일이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아빠의 장례식은 꽁꽁 숨겨놓는다. 쫓긴다. 칼을 든 괴한이 쫓아온다. 식은땀을 흘리며 깬다. 쫓기기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아?


언젠가 떠난다. 심장판막 이상이 있다는 의사의 소견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아꼈다. 수술비를 생각해서, 입원비를 생각해서 비축했다.

그 겨울날 집안에서 점퍼를 입고 모자까지 쓰고 자면서도 추워, 추워했다는 아빠의 말이 나를 할퀴도록 내버려 둔다. 민폐 끼치기 싫어 딸들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아빠의 마음을 손으로 쓸어본다. 내가 아끼지 않더라도 아빠 역시 아끼고 있었다.

출가외인인 딸의 돈을.


상처는 필요에 의해 생긴다. 술 취해 구토하는 나를 보고 옆사람이 말한다.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아빠를 사랑했다고. 사랑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내가 아낀 게 문제지. 누군가의 마지막이든지 내가 아낀 건 문제가 되는 거야. (당신이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끼면 안 되는 거잖아. 마지막 날들인데. 따뜻해야지 추우면 안 되는 거잖아, 마지막 날들인데. 그렇지 않아?

술 취해하는 소리들, 소용없는 짓들.


친구들을 만난다. 타는 듯한 여름이다. 시원한 카페에서 달콤한 커피를 마신다. 때는 지금이다. 창밖에 자동차들은 지나가고 시원하게 팔다리를 내놓은 사람들이 더위에 얼굴을 찡그리며 인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지금, 에어컨 나오는 카페에서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이야기하는 지금, 지금이야. 말해, 말해야 해. 참 덥다. 왜 이렇게 더워 보통날을 이야기하듯이 우리 아빠 돌아가셨어. 언제? 아 겨울에. 최고로 춥다고 했잖아. 노인 심장에 무리가 간 거지 뭐. 연락하지 그랬어? 뭐 갑자기라 경황이 없었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대답.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아, 더워. 이번 여름은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지나간다. 아빠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속의 무덤은 누구도 볼 수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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