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그랜마 모지스>
비대면으로 유아기의 발달특성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사는 지역, 나이가 모두 다른 90여 명의 학생들이 자신의 집 혹은 도서관에서 노트북이나 핸드폰 화면을 주시하며 교수의 강의를 듣는다. 강의가 중간을 넘어서고 있을 때에 카메라를 향해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교수에 대한 칭찬의 말과 자신의 아이를 다시 뱃속에 넣었다 꺼내고 싶다는 글이 채팅창에 올라온다. 채팅창을 읽은 교수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성인이 된 자식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알려오니 그 말을 들은 학생 중 한 명이 손주에게 잘해야겠어요, 채팅창에 적는다.
식곤증으로 커피를 마시며 강의를 듣던 참이었는데 잠깐의 에피소드에 가벼운 웃음이 번지며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말하는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를 떠올렸다. 모지스 할머니는 후회나 반성보다 살아 내는 것에 특화된 분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셋째 딸로 태어나 열두 살에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결혼하여 농장일과 집안일을 하는 주부로 지내다가 관절염으로 자수 놓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어릴 적 꿈이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의 나이가 75세였으며 아이들의 죽음(10명의 아이 중 다섯 명이 유아기 때 사망했다.) 부모의 죽음, 남편의 죽음, 결핵으로 인한 성인 딸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였다. 이상한 것은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에 죽음의 그림자는 드리워지지 않는다.
사과잼을 만들어 자동차를 경품으로 받고 눈 오는 날이면 썰매를 타고. 단풍나무 수액 받아 시럽 만들기. 맑고 청아한 봄날의 풍경, 연날리기, 결혼식, 이사, 칠면조 잡기. 시끌벅적한 일상이 자연과 어우러진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 같은 일들. 저랬던 시절이 있었지 함께 어울려 지내던 때가,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그림들.
잃어버린 것들로 슬픔에 잠기기보다, 가진 것이 없다고 불평하기보다, 배우지 않았다고 실의에 빠지기보다 모지스 할머니는 버터를 만들고 감자를 튀기며 사과잼을 만들고 빨래를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한다.
<빨래하기>라는 그림이 있다. 나무들은 한쪽으로 꺾여 바람이 세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사선으로 표현한 붓터치에서 거친 비의 질감이 느껴지는데 빨래를 너는 사람, 빨래통 앞에서 빨래하는 사람, 양손에 물동이를 들고 걷는 사람 등 사람은 분주하다.
비가 내린다고 빨래를 안 할 수 없지. 비 오는 것은 자연이고 빨래는 행동이다. 자연은 사람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으나 행동은 조절할 수 있다. 눈 내린다고 칠면조를 안 잡을 수 없고 떨어져 상처 입은 사과로는 달콤한 사과잼을 만들고.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에는 자연과 사람이 적절하게 어울리며 어느 한쪽을 악마라 몰아가지 않는다. 수긍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게 정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벌어지는 일상의 모습들.
<무지개>라는 그림을 끝으로 101세의 모지스 할머니는 이 세상을 벗어난다. 75세부터 시작한 그림으로 1600점의 시끌벅적한 그림을 남겼고 그동안도 딸 애나의 죽음, 막내아들 휴의 죽음을 경험했다. 죽음과 삶이 동시에 이어지지만 명랑한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죽음이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지스 할머니는 보여준다. 조금 삐딱한 기질을 타고난 나는 삶이 이렇게 아름답기만 하다고요? 노동이 재밌기만 한가요? 그림자진 삶을 폭로하고 싶지만 75세까지 101세까지 산 것은 아니기에 기다려보기로 한다. 할머니가 보여주는 그림이 진실인지 그 나이 때는 그저 모두 아름답기만 한지.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