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일상과 읽기

by 북남북녀

이 삼일이면 읽었을 텐데. 도서관에 앉아 있는 시간을 즐겼다면 하루도 가능했을 텐데. 1권 읽는데 2주가 지나갔으며 그 이유를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는 없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전화해서 집에 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탄 비행기가 지연되어 활주로에서 움직이질 않는 거예요. 겨우 집에 도착했더니 그녀는 욕실에서 나오려 하질 않더군요. 결국 한 시간 동안 침대에 앉아 제발 나오라고 그녀를 설득했어요. 그런데 마침내 그녀가 욕실 밖을 나왔을 때 양쪽 팔에 피가 철철 흐르지 뭐예요.”

“그러더니 그녀가 말하더군요. ‘당신이 날 어떤 꼴로 만들었는지 봐’라고요.” p370

느린 속도로 읽어간 키라 밴 겔더의 자전적 이야기 <나는 재즈광, 히피, 마약중독자 그리고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였다>에서 기억에 남은 건 의존성이다.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감정 기복이 크다. 애인이 늦는다는 이유로 양쪽 팔을 그으며 보란 듯이 애인에게 보여준다. 당신 때문이야. 보라고. 당신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불안감을 건드리는 행동을 그가 멈춰주길” p241


파괴적 행동은 상대방 때문이다.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 때문이고 어린 시절 받은 성학대 때문이다. 잘못된 양육도 맞고 성학대도 사실이고 상대방의 잘못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으로 현재의 삶은 심각하게 침해받는다. 몸을 긋고 분노하고 위험한 곳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사이코패스를 아동기의 범죄에서 회복하지 않은 성인이다,라고 도널드 위니컷은 표현했는데 인격장애는 마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어린 아이다,라는 표현이 생각나기도 한다. 떼 부리고 우는 어린아이. 이러한 행동으로 주변인들을 질리게 만드는.

성인이 된다는 것은 절대적 의존에서 독립으로 변화되는 과정이다. 일 때문에, 당신 때문에, 아이 때문에, 어린 시절 때문에 삶이 괴로워지는 것도 사실이나 그렇기 때문에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배워가기도 한다. 그 속에서 발견되는 것들. 감사하는 마음, 서로 간에 오가는 애정 같은 것들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책을 읽지 못한 것은 새로 시작한 일 때문이 아니라 시간을 소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장도 봐야 하고 일에 관련된 다른 사항들도 알아봐야 하고(누가 알아보라고 강요하지 않더라도) 흥미로운 것들에(영상 같은) 관심을 주며 스트레스도 날려야 한다. 누구도 내 화를 건드리지 않는다. 화는 내 안에 있다. 조금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사실이지만.


변화를 맞으며 아이들이 감기를 한 차례씩 앓고 나 역시 한 달 동안 감기약을 복용한다. 남편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던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사고 수습을 위해 남편은 주차장에 남고 발열로 뜨거운 아이 손을 잡는다. 이게 삶이지.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엘리베이터버튼을 누르며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보일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게 삶이지. 뭐 별거 아니잖아.



키라 밴 갤 더 <나는 재즈광, 히피, 마약중독자 그리고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