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디아스 <트러스트>
나는 독립한다는 생각조차 감히 즐겨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다른 신체적 감각이 이런 전율을 방해했다. 목에 상처가 난 것 같은 분노. 가슴에 멍이 든 것 같은 격분. 베벨은 내게 이런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적이 없었다. 자기 제안을 고려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었다. 그냥 집을 빌리고, 내게 즉시 그리로 이사하라고 했다. 혼자 산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기는 했으나, 내가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이리저리 명령에 따라 움직여진다는 건 모욕적이었다. 그렇더라도 그런 기회가 제시된 불쾌한 방식을 이유로 기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허영심 어린 동시에 어리석은 일로 보였다.
에르난 디아스 <트러스트> p393
성공한 투자자 앤드루 베벨의 회고록을 작성하고 있는 아이다 파르텐자는 물질을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자 아버지와 살고 있다. 앤드루 베벨은 회고록을 위해 아이다 파르텐자에게 임대한 집으로 이사하라고 명령하듯 말한다. 아이다 파르텐자는 독립하여 혼자 사는 것에는 반기지만 상의나 부탁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에 불쾌감을 느낀다(“내가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이리저리 명령에 따라 움직여진다는 건 모욕적이었다.”) 아이다는 갈등하나 독립의 기회라는 결론을 내리고 앤드류 베벨의 명령에 따라 아버지에게서 독립한다.
이런 것이 돈의 힘인가.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나 상대방은 존중대신 돈으로 기회를 제공한다. 굶주린 개에게 뼈다귀를 던지듯.
앤드루 베벨이라는 전설적인 투자자를 네 가지 관점으로 보여주는 <트러스트>는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진실은 어디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보이는 진실이 진실인가, 돈으로 구부린(조작된) 진실인가
허리 아픈 할머니 한 분이 병원 침상에 누워 있다. 간호사가 오자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움직일 수 없노라 하소연한다. 간호사는 좀 참으셔, 이따가 괜찮아져. 간호사의 말에 할머니는 신체의 통증보다도 마음이 상한다. 반말하지 마, 왜 반말해. 좀 참으시라고, 약 들어간다고. 간호사는 친절하지만 영혼 없이 다시 할머니에게 대답한다.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소리는 지르지 못하지만 반말하지 마, 반말하지 말라고. 성을 낸다. 간호사는 답이 없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할머니 곁을 지나 다른 환자에게 향한다.
이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 할머니의 존엄이 간호사의 반말투 말에 훼손되고 있구나, 생각했다. 간호사는 자신의 말투가 할머니의 존엄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했다. 자신의 할 일을 성실히 행할 뿐
물질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물질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다. 묵묵히 제 기능을 다하면서.
물질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아버지와 물질의 풍요를 보여주는 인물 앤드루 베벨 사이에서 갈등하며 모욕감을 느끼는 아이다 파르텐자처럼 현대인은 기회라고 결정 내려 받아들이지만 물질로 존엄을 훼손당하는 입장에 처해진다.
할머니가 성을 내는 이유를 간호사는 알 수가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