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반이면 고민을 한다

<부드러운 양상추>를 읽으며

by 북남북녀

다섯 시면 날이 밝기 시작하는 여름에 가까운 봄날, 고민이 생겼다. 책을 읽다가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맴맴 돌아 다섯 시 반만 되면 책을 읽지 못하는 거다. 겨울과 달리 다섯 시면 날이 밝는다. 성격이 급해 바깥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어 날이 밝자마자 재빨리 창의 블라인드를 올린다. 초록은 싱그럽고 포르르 날아오르는 새는 지저귄다.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너도 나와, 나오라고라는 소리로 들려 읽던 책을 놓고 밖으로 나가 싱그러운 세상을 걷고 싶다. 풀숲 냄새가 진하게 맡아질 것 같아 입에 침이 고이듯 머릿속에 싱그러움이 고이는 느낌이다. 블라인드를 열고 부엌 쪽 식탁에 앉아 책에 집중하려 하면 나갈까, 말까 갈등하느라 책장이 건성건성 넘어간다.


주말이라면 남편이 집에 있어 느슨해도 되는지라 집을 나서면 그만이지만, 평일이면 6시부터 식사 준비에 들어간다. 집에는 직장에 나가는 성인 한 명, 학교에 다니는 아이 한 명이 있고 외출하지 않는 나는 그들의 외출 준비를 도와야 한다.

일곱 시면 아침밥을 먹어야 하기에 다섯 시 반쯤이면 이십 분만 걷고 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가지도 않고 책도 건성건성 읽으며 시간이 다 가버린다.


땡. 여섯 시가 되면 체념하는 마음과 함께 삼십 분간 뭐 한 거지,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면 스무 장은 읽었을 텐데라는 비탄의 감정 한 조각을 품고 지글지글 계란 프라이를 부쳐내거나, 볶음밥 채소를 자르거나, 육수에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인다.

날이 일찍 밝으니 유혹하는 것이 많네, 라는 생각도 하면서.


지금은 일요일 오전 여섯 시를 넘긴 시간. 네 시에 일어나 책을 읽다가 다섯 시에 날이 밝아 블라인드를 올렸다. 여름에 가까운 화창한 봄날. 싱그러운 초록이 눈에 박히고 까치가 날아오르며 꺅꺅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오라고, 나오라고"

오늘은 안 나갈 거야,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주말이지만 어제 하루 종일 외출하느라 읽을 책이 밀렸다. 도서관 반납 기일을 지켜야 하니 어제 잠을 자기 전부터 일요일이지만 나가지 말자고 다짐하며 잤다.


대신 부엌 식탁을 벗어나서 베란다 테이블에 독서대를 두고 책을 읽어나갔다. 유혹에 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 때문인지 새벽 독서는 성과가 있었다.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을 다 읽었고 에쿠니 가오리의 상큼한 초록 표지 에세이를 반은 읽었다. 운이 좋아 아이들이 늦잠을 잔다면 오늘만 두 권째 마무리한 책이 되기에 읽는 속도를 내고 있었는데. 이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책의 부제가 에쿠니 가오리 푸드 에세이다. 제목도 <부드러운 양상추>. 주구장창 먹는 이야기로만 채워지지는 않지만 작가의 섬세한 문장에 배가 고프다. 미역귀 묘사에 당장 미역귀를 사다가 끓는 물에 데쳐 맛봐야 할 듯싶다.


아, 역시 인생은 쉽지 않다. 밖으로 나오라는 유혹을 물리치려 단단히 대비했더니(베란다가 추울까 봐 양말을 신고 가디건까지 꺼내 입었다. 어젯밤에 미리 준비해놨다.) 먹는 유혹에 굴복해서 책을 다 못 읽고 부엌으로 들어가 지지고 볶고 할 듯싶다.


아침 해로 앞의 회색 건물은 옅은 주황빛으로 환하다. 까치는 꺅꺅 소란스레 지저귀고 싱그러운 나무는 너 알아서 하라고 무심히 쳐다보는 이른 아침 시간. 배가 고파 고민한다.

읽을까, 먹을까. 읽을까, 먹을까. 푸드 에세이를 집어 드는 게 아니었는데. 책 선택에 실패한 주말 아침이다.





엄살 부리지 않네.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를 읽으며 생각이다. 반려견의 시한부 판정 앞에서도 독재자 같은 아버지의 행동에도, 사회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에도 그렇구나 하는 인정이 있다. 세상이 어떻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맛을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사소한 것을 즐기리라, 라는 열렬한 결의가 배어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또한 용기일 거라는 생각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