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되지 못하고 엄마는 됐다

요시모토 바나나 <매일이, 여행>을 읽고 떠올린 것들

by 북남북녀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자작나무의 이파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신축 건물이라 옮겨 심은 지가 얼마 안 돼 잎은 무성하지 않고 몸통도 가녀리며 잎 자체도 아이 손처럼 작고 여리다. 한낮, 멍하니 누워 밖을 보고 있는데 그 여린 잎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이 힘내, 힘내라구 말하는 듯했다. 그냥 그런 순간이었다. 호기롭게 직장을 때려치우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마음에 잔뜩 부담감만 지니고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열심히 공부해야지 뭐 하는 거야,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결과야 뻔하지 라는 질책보다는 지쳐있는 모양이네, 힘을 내라구 친구 라는 메시지가 그 이파리의 흔들림에서 전해져 왔다. 싱그러우면서도 상큼하게.


몹시 더운 날이 계속되고 땅이 갈증으로 쩍쩍 갈라지는 느낌일 때 나는 베란다 호수를 창밖으로 빼서 나무 주변에 물을 쏴아 뿌렸다. 넓디넓은 땅에 내가 뿌린 물은 (나무에게도 간이라는 게 있다면) 간에 기별도 가지 않겠지만 내게 힘과 위로를 전하려 했던 자작나무에게 어떻게든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때는 그러한 일들이 자연스러웠다.


다음에는 로즈마리, 라벤더, 아이비, 바이올렛, 테이블 야자, 알로카시아, 율마를 한꺼번에 구입했다. 식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트 상품으로 대범하게. 베란다에 작은 테이블을 마련해서 쪼로록 놓고 키웠다. 동향의 집이라 오후면 사라지는 햇빛으로 라벤더와 로즈마리는 키만 높이 자랐다. 키우는 방법을 몰라 예쁘게 가지치기는 못했지만 한 번씩 잎을 쓸 때마다 손에 묻어 나오는 향기로움에 아, 이게 로즈마리구나,이게 라벤더구나 흐뭇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하던 일은 그만두고 거실에 누워 나무 이파리의 흔들림을 바라보거나 베란다로 나가 키우는 식물의 이파리를 한번씩 쓸어주는 일이 전부인 여름이었다. 수험서는 옆으로 던져두고서.


그런 시간이 있었네,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한가로운 시간이.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으로 평온했을 때가 있었네. 요시모토 바나나의 <매일이, 여행>을 읽으며 떠올린 기억이다.


일 나간 남편은 저녁때나 들어오고 백수에 수험생이 되어 뒹굴뒹굴 지내다가 큰마음먹고 일어나 분갈이를 했던 시간. 바이올렛이 피워낸 보라색 꽃에 신기해하며 네가 바이올렛이구나, 했던 시간들. 창밖에 있던 나무가 위로를 준다고 느낀 찰나의 순간이 나를 초록의 세계로 이끌었다. 조용히 살아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 시절은 꿈도 싱그러웠다. 알로카시아를 안방 침대 아래쪽으로 뒀는데 꿈에 알로카시아가 천장만큼 자라 있었다. 내가 눈을 뜨니 커다란 잎이 내 쪽으로 서서히 굽어졌다. 창으로는 맑고 투명한 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커다란 얼굴을 마주한 느낌인데 무섭지가 않았다. 싱그럽고 신비로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충만한 느낌, 비어 있는 곳이 살짝 채워진 느낌. 그 이후로 커다란 이파리 한두 장 가지고서 물이 부족할 때는 그 큰 잎이 한없이 쳐지는 느낌이고 물이 들어가면 또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을 주는 알로카시아를 흥미롭게 봤던 듯싶다. 물이 많으면 잎 끝에 방울방울 달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도 장난 마냥 재밌었다.


공무원 수험생이라는 우울한 기간이었으나, 공무원이 되지 못했기에 실패로 여겨질 수도 있는 기간이었으나 그 기간은 한 나무와 몇 개의 식물이 나를 일으키는 기간이기도 했다. 한없이 빈둥거리며 지냈던 시간은 그동안의 직장 생활로 지쳐있던 마음이 소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분갈이로 다른 생명을 위해주고 몇 개의 식물과 매일 인사를 나누고 내가 힘내기를 바라는 나무 하나를 항상 볼 수 있는 곳에서 뒹굴뒹굴할 수 있었다니 축복이다.


지금 사는 곳은 전에 살던 곳과 지하철로 두세 정거장 거리다. 처음 우연히 이 동네 지하철역에 내렸을 때 마음이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었다. 넓게 펼쳐진 밭과 건물로 가려지지 않는 산과 코 끝에서 맡아지는 풀냄새, 흙냄새. 여름 한낮 우연히 오게 된 지하철역에서 옆에 있는 남편에게 우리 여기로 이사 오자는 말을 꺼냈다.


처음의 이사 시도는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로 수포로 돌아가고 아이가 그전에 살던 곳에서 유치원에 적응하며 이사를 포기했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과 맞물리며 어느 순간 작년 5월에 이 동네로 오게 됐다. 첫걸음에 마음에 훅 들어오던 동네로.


아이들과 집 밖으로만 나가도 눈앞에 산이 펼쳐지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 외에는 새소리만 가득한 이 동네가 좋다. 그전 살던 동네는 길고양이들도 잔뜩 경계를 하고 사람을 볼 때마다 도망 다니기 바빴는데 이곳의 고양이들은 인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아이가 다다닥 뛰어가면 후다닥 자신의 거처로 얼른 도망가기는 하지만 사람이 오가더라도 신경을 쓰지 않고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긴다. 길고양이가 별다른 경계 없이 느긋하게 일광욕을 할 수 있는 동네라는 것이 마음에 쏙 든다. 작은 생명들에게 해를 주는 사람이 적은 평화로운 동네 같아서.


어제는 애견 미용실 앞에서 아이가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그 가게 앞에는 작게 원목 데크가 깔려 있고 나무로 울타리가 쳐있어 울타리 밖에서 강아지들이 노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는 평상시 멍멍 짖으며 나오던 강아지를 볼 수 없어 의아해하며 그 가게 앞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기다리다가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보게됐다. 두세 구루의 나무가 작은 길가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면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은 예전 공무원 수험생이던 시절 내게 힘을 주던 나무를 떠오르게 했다. 오전 햇살에 싱그럽게 부는 바람으로 아이같이 작은 손을 반갑게 흔들던 이파리들. 많이 지쳐있구나,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품고.


너는 예전 내가 알던 그 자작나무의 친구인가, 아니면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어 한 나무하고만 만난 적이 있어도 지구의 모든 나무와 연결되는 것일까. 예전에 느꼈던 평화로움이, 싱그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한껏 그리운 마음을 품고서.

아이는 강아지를 기다리느라 가게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나는 싱그러움에 가슴이 벅차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런 오전 시간이었다.


마법의 문은 늘 열려 있다. 사실은, 언제나. 그것을 찾아내고 못 찾아내고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매일이, 여행>210p



인생에는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달부터는 다시 직장을 알아봐야겠는데 생각하고 뒹굴뒹굴하던 생활을 청산하려 할 즈음 임신인 걸 알았다. 공무원은 되지 못하고 엄마는 됐다. 나무와 식물의 생명으로 충만했던 시간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신비로운 일들이,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알려주는 일들이.


(물론 식물이 아닌 남편에게는 욕 좀 들었다. 대체 돈만 쓰고 뭐 하는 거야. 빵빵 놀기나 하고.

아기가 나왔잖아, 그럼 된 거지. 노는 것도 다 필요하니까 노는 거라고. 나는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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