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이 좋아, 쫄면이 좋아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쫄면이라고 대답했을 거다.
우리 집 앞에는 스낵카가 있었다. 스낵 카에서 쫄면을 먹는 날은 세상 신나는 날이었다. 고물 버스를 식당으로 개조한 버스에는 창밖을 보며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열 개 정도의 간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운전수 칸으로는 작게 조리도구를 갖추고 있어 우동, 김밥, 쫄면 같은 메뉴를 판매했다. 우리 식구들은 승객 칸 쪽의 간이의자에 일렬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주문한 쫄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창밖 도로가에서는 자동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쌩하니 지나갔고, 지이이이잉 쿵쿵 공사장 소음이 들려오기도 했다.
엄마 것, 언니 것, 내 것이 차례대로 길고도 좁은 테이블에 놓인다.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 반 토막 계란과 얇게 채 썬 양배추가 올려있다. 양배추 위로 한 숟가락 분량의 새빨간 초장이 흘리는 모양새로 얹어 있다. 양배추향과 시큼한 초장 냄새에 먹기 전부터 침이 꼴깍 넘어갔다. 침샘 분비 폭발이다. 초장과 양배추와 쫄깃한 면을 섞어 빨개진 면을 한 젓가락 먹을라치면 입안에서 불이 났다.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옆에서 먹고 있는 엄마와 언니를 봐도 비슷한 모양새다. 매운맛 쫄면에 얼굴이 시뻘겋다. 땀도 삐질삐질 솟는다. 빨갛고도 시큼한 내 가득했던 쫄면을 맵다, 매워하면서도 우리 가족은 맛있다고 잘도 먹었다.
어린아이가 먹기에는 자극적인 맛이라 나는 엄마에게 꼭 핀잔을 들었다. 물배가 차고 혀가 아려서 큰 그릇의 쫄면을 반도 못 먹고 남겼기 때문이다.
주문할 때 엄마는 너는 우동 먹어, 하는데 나는 언니와 엄마처럼 쫄면을 먹겠다고 극성스럽게 우겼다. 매워서 반은 남긴 쫄면 그릇을 보면 엄마는 그럴 줄 알았지라는 시선으로 그러게 우동 먹으라 했잖아, 라는 말이 꼭 나오고야 말았다.
엄마에게 핀잔을 듣더라도, 먹지 못해 반은 남기더라도, 입안에서는 불이 나더라도 나는 언제나 우동 보다는 쫄면을 먹겠다고 우겼다. 입안에서 불이 나는 듯한 자극적인 맛은 심심한 일상에서 모험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롤러코스터에 버금가는 짜릿짜릿한 흥분감이랄까. 다음에는 꼭 한 그릇 다 먹어보리라, 는 의지가 새록새록 샘솟기도 했다. 쫄면만 생각하면 입 속에서 침샘 분비가 폭발하듯이.
아이들이 서너 살 되어 말을 어느 정도 하게 되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단호하게)
“왜?”
아이는 잠시 생각한다.(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엄마는 재미니(재미)가 없지”(목소리를 작게 하며)
우동이 좋아, 쫄면이 좋아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쫄면!이라고 대답했을 거다. 아빠가 좋다는 아이의 대답에 음, 그럴 수도 있겠네 조용히 수긍했다.
(속이 쓰려 매운 것을 예전처럼 먹지 못하는 지금은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다. 언젠가는 스티븐 킹의 공포소설을 독파하는 게 목표다.)
그 동네서 산 기간을 생각하면 초등학교 저학년쯤이라 두 그릇만 주문해서 나눠먹어도 됐겠네, 싶은데 스낵카 주인아줌마는 우리 옆집 살았다. 우리가 다 먹으면 아줌마가 그릇을 가지러 왔다.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내오기도 하면서. 엄마는 그릇을 가져가는 아줌마에게 내가 남긴 쫄면을 보며 미안해했고 아줌마는 아이들은 먹는 양이 적다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간혹 아줌마와 엄마는 종이컵에 커피를 타 마시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린 내가 듣기에는 알 수 없는 말들이었으나 장사가 안된다는 한탄도 간간이 섞여 들었던 듯싶다. 혀에 불이 나게 맛있던 쫄면집은 곧 사라졌다. 일렬로 된 간이의자에 앉는 사람은 우리 식구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이 다였던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