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룩실룩 베란다 창고에서 둘째가 움직인다. 몸은 반쯤 창고 안에 밀어 넣고서. 주말이라고 중학생 조카를 포함한 언니네 식구들이 놀러 왔다. 동생도 와서 집안은 말소리로 넘쳐나는 중이다. 새로운 사람들에 언제나 목마른 첫째는 생일인 것처럼 신났다. 중학생 조카 옆에 딱 붙어서 조잘조잘 말하느라 바쁘다. 그런 와중에 네 살 둘째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베란다 창고에서 테이블 모래놀이 세트를 들여다보느라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있다.
오 분쯤 지났는데 둘째가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베란다를 나가 보니 샤워호스를 들고서 총 쏘는 것처럼 앞 쪽을 향해 두두두 하는 자세로 있다가 공중에서 이리저리 휘젓기도 한다. 대체 혼자 뭐 하는 걸까, 나는 다시 거실로 들어온다. 한 삼십 분쯤 지났을까 둘째가 거실로 온다.
내 옆이나 아빠 옆에 딱 붙어 손님들 곁으로 가지 않는다. 손님들 곁에 딱 붙어 있는 첫째와는 딴판이다. 남편은 그런 둘째를 보더니 너 닮았네 그런다.
명절날 손님이 오거나 직장이나 학교가 쉬어 집 안에 식구들이 꽉 들어차는 날이면 나는 밖으로 나갔다. 대형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명절 당일은 대형서점이든지 시립도서관이든지 모두 문을 열지 않기에 어떤 날에는 사설 독서실을 끊었다. 식구들이라도 서 너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있는 것이 힘들어서.
종교생활에 더 열심일 때는 수녀 같은 수도자가 되고 싶었다. 아쉽게도 개신교도라 기회는 없었지만.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시도 좋고 평생 은둔했다는 삶도 좋아서.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시인은 참석하지 않는다. 지인의 피아노 연주를 청했으나 시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은 채 집 안 어딘가에서 지인의 연주를 듣는다. 연주가 끝나면 짧은 시 같은 것을 적어 테이블 같은 데 올려둔다.(<진리의 발견> 에밀리 디킨슨 편 참고)
내성적이다, 내향적이라는 말로 이런 성격을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둘째의 행동을 보면서 그것도 나와 비슷한 행동의 패턴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혼자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왜 그렇게 열심인 걸까.
얼마 전 부모님이 된장국을 끓여 왔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 우리 집의 간은 약한 편이나 어른들 입맛이라 된장국이 진하고 걸쭉하다. 아침에 첫째의 식판에 된장국을 덜고 밥과 반찬을 담아 주니 여덟 살 첫째가 대번에 국 맛이 이상해한다. 할머니가 앞에 있는데도. 할머니가 끓여 오셨어. 맛있어. 하는데 첫째는 맛없어, 바꿔줘 한다.
역시 나와 다른 첫째. 외향성이 두드러지는 첫째는 관계가 있더라도 관계에 묶이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 있든지 자기 혼자 있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나는 된장국과 어머님이 동일시되어 된장국이 맛이 있든지 없든지 맛있어가 답이 되지만(실제로 맛있기도 하고) 첫째는 된장국과 할머니는 별개다. 할머니를 좋아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면 맛이 없다.
첫째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불편할 이유가 없다. 함께 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난다.
나와 둘째 같은 경우는 사람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사람에 맞추느라 자기 것은 밀어둔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한편으로는 자신의 욕구는 참아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잔뜩 긴장하고 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할지 이 사람이 어떤 말을 할지 집중하며 상대를 바라본다. 상대방은 모를지라도 그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소수의 사람이 편하다. 적응된 소수의 사람 앞에서는 덜 참게 되고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덜 신경 쓰인다. 관계의 범위는 좁을 수밖에 없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애정의 깊이는 깊어진다.
(땅을 판다면 여기저기 얕게 파기보다는 한 곳의 땅을 집중적으로 파는 스타일이라 할까. 과하다 할 때는 질릴 만큼, 징하게.)
손님들이 돌아간다. 외향적인 첫째는 아쉬움에 글썽글썽하며 눈물을 삼키고 현관 밖까지 아빠와 손님 배웅을 나간다. 내성적인 둘째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방 안에서 안녕이라고 손을 흔든다. 아빠와 첫째는 손님 배웅을 나가고 나와 둘째만 집에 남았다. 둘째는 상 위에 남겨진 과일을 먹는다. 그리고 모래놀이 세트를 꺼내 달라고 한다. 낮에 베란다 창고에서 실룩실룩하며 살펴보더니 모래놀이가 하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손님들이 있을 때는 좋아하던 과일을 줘도 고개만 도리도리 흔들고 혼자서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오더니 마음에 모래놀이에 대한 욕구를 품고 있었나 보다. 손님들이 있어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는 못했으나.(둘째는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응하느라 힘이 빠져있으리라.) 너무 늦어서 내일 하자고 둘째에게 설명하니 또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참 순한 아이다.
순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인해 참고 있는 것이 많다는 말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첫째를 학교까지 바래다주는 길. 익숙한 소수의 몇 명에게 애착을 강하게 느끼는 둘째는 첫째와 헤어지는 것이 섭섭해 누나, 누나 소리쳐 부른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 설렘을 강하게 느끼는 첫째는, 둘째의 애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으로 들어간다.
첫째가 학교로 들어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둘째와 엄마는 왠지 첫째에게 버림받은 느낌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가다니.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엄마는 둘째에게 놀이터 갈까 묻는다. 둘째는 아니, 집으로 가 그런다. 첫째가 있었다면 신나서 놀이터 가자고 그랬을 텐데. 비슷한 성향인 엄마와 둘째는 둘만 있으면 또 심심하다.
뭐 하자고 떠미는 사람이 있어야 그나마 움직이는 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