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질반질 예쁜 이유

by 북남북녀

타닥, 타다닥 빗방울이 벽을 때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또 비네, 어제도 비더니.

문을 닫아놓은 방안 공기가 눅눅하다. 어두운 방안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네 살 아이가 내 기척을 느꼈는지 옆으로 돌아누워 팔로 나를 안는다. 나 역시 다시 눕는 자세를 취하며 팔로 아이를 감싼다. 옆으로 누워 서로를 안고 있는 우리. 동글동글한 아이의 머리가 내 얼굴 밑에 놓인다. 아직까지는 품에 꼭 들어오는 작은 체구다. 새벽이니 더 자라고 등을 토닥이는데 킁킁, 코에서 맡아지는 이 냄새는.


근래 아이가 씻는 것을 거부해서 대충 씻겼다. 팔에 아이를 끼우고 머리를 감기려면 버둥거리며 하도 울어대서 머리에 간신히 물만 묻혔다. 아이의 머리에서 동물 털 냄새와 땀 냄새가 섞인 비릿한 향이 맡아진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뒤에 우리 집에 방문한 엄마는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아기의 뒷머리를 조물조물 만지면서 이렇게 만져 줘야 해, 그래야 뒤통수가 예뻐져라고 당부했다. 엄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육아에 관련된 다른 여러 일들로 정신없이 바빠서 아이의 뒤통수까지는 잘 잡아주지 못했다. 지금은 아이의 머리를 빗길 때마다 성의 있게 만져줄 걸 후회한다. 납작한 뒤통수가 내 탓 같다.


초보 엄마에게 또 하나 당부한 것이 있다면 목욕이다. 조심스러워 아기를 안기도 힘든데 그 아기를 한쪽 팔로 안고 다른 쪽 팔로 씻기는 것은 진땀 나는 일이었다. 아기가 우는 통에 내가 제대로 씻기지 못하자, 엄마는 나 대신 아기의 머리를 감기고 얼굴과 몸을 가차 없이 문지르면서 이렇게 빡빡 씻겨야 해, 그래야 애가 반질반질 예뻐져 라고 말했다.


아기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다. 내가 낳지 않은 타인의 아기들은 항상 보송보송했다.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같았고 마시멜로 같은 달콤한 향이 맡아졌다. 그 달콤한 향과 보송보송함 뒤에 아기를 청결하게 유지하려는 부모의 끊임없는 수고가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아기는 제대로 씻기지 않으면 살 접히는 부분에 때가 낀다. 첫아기 목욕 때 내가 안는 것이 불편한지 아기가 자지러져 제대로 씻기지도 못하고 마무리하느라 급급했는데 어느 날 겨드랑이 부위를 씻기는데 섬유 덩어리가 뭉텅이로 나오고 살 접히는 부분마다 먼지가 자리하고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손톱이 금방 자라 까맣게 때가 껴있기도 양치질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입 냄새도 맡아졌다. 먹는 게 다양하지 않아 성인의 냄새나 성인의 때만큼 강력하거나 보기 싫지는 않았으나 보송보송한 말간 느낌과도 거리가 있었다.


빡빡 씻겨야 해, 그래야 반질반질 예뻐져라는 엄마 말이 그 당시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생각나는 말이 됐다.


그러고 보면 빡빡 씻겨야 할 게 꽤 많다. 방바닥도 빡빡 문질러야 반질반질 해지고 냄비도 빡빡 씻어줘야 반짝반짝 해진다. 유리창도 빡빡 닦아줘야 뽀득뽀득 해지고 싱크대의 상판도 빡빡 문질러야 맨질맨질해진다. 하물며 베란다의 식물도 한 번씩은 잎을 헝겊으로 닦아줘야 햇빛에 더 반짝반짝 빛난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은 그냥 빛나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보며 빡빡 닦아줘야 반질반질 해진다는 지혜가 그 속에 숨어 있다.

재능도 빡빡 갈고닦아야 빛이 나고 마음도 한 번씩은 빡빡 씻어줘야 개운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 속에는 주기적으로 빡빡 닦아내야 하는 수고가 들어 간다.


오늘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하늘이 세상을 빡빡 닦아주는 수고 인지도 모르겠다. 먼지가 가득한 공기를 힘차게 세수시키고, 존재하는 것들 위에 내려앉은 불순물을 빡빡 씻겨내는 수고.

그러려고 어제부터 굵은 빗줄기가 줄기차게 땅 위에 내리고 있는지도.


하늘도 세상을 청결하게 하려고 이렇게 열심인데 나도 오늘은 아이를 빡빡 씻겨 청결하게 해야겠다. 반질반질 보송보송. 목욕이라는 말만 꺼내도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 울음 터지는 네 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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