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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Oct 13. 2022

신세지며 고마워하며 살기

_ 신이 세상에 내려오기 전날

바쁜 핑계로(내탓) 올해 못만나던 친구에게서 생일축하 전화를 받았다. 경건하게 반성하는 마음으로.. 겸사 이사를 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사갈 집에는 야외 테라스가 있다는 말을 전했다. 테라스... 난 테라스가 있는 집이라고를 몇번 말했다. ㅎㅎㅎㅎ 어차피 마포쪽에 집들 월세가 장난 아니고, 다른 자치구로 간다고 해도 교통비가 있기에 상황은 마찬가지라 돈을 열심히 벌기로 했다는 말과 고양이 둘을 데리고 아주 작은 집으로 가기는 힘들었다는 말도 했다. 그래그래 잘했다는 친구가 "문득 서울에 혼자 와서 단체 일하면서 열심히 살았네, 혼자서 월세를 낼 수 있을 만큼. 장하다야." 문득!! 큰소리로 "그래, 나 IMF 맞고 서울와서 옥탑방에서 이만큼 왔다."며 푸하하 웃었다. 서울온지 딱 20년된 해의 마지막 주간을 맞이한 날 유쾌한 통화였고, 고마운 격려였다.
년초에 보자는 약속을 하며 끊고 돌아앉으니 생각이 여러가지.

사실 여전히 어렵고 넉넉치 않은 살림이지만 고양이 둘을 데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내가 딱히 저축을 했거나 돈을 더 많이 벌거나 한 것은 아니다. 98년 서울에 올 때도 좁은 방에 이부자리 하나 내준 대학 선배가 있었고, 그 뒤 독립할 때 보증금 300만원 무이자로 빌려준 단체 선배가 있었고, 문화기획을 가르쳐준 수많은 선배들과 마을에 와서는 동네사람들의 소소한 지원부터 생의 큰 지지대가 된 릴라 친구들까지, 그리고 지금은 마을예술창작소에 관련한 서울지역의 멋진 사람들의 관계라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이 집을 얻은 것도 릴라 친구들의 도움 덕이다. 돌아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신세를 지고 있었다. 20대 이후로 대학 장학금을 받아도 집에 고스란히 드리고 졸업 후에는 집안의 원조를 받지 않았다. 받지 않기는 커녕 집이 급격히 가난해져서 돕지 못하고 있는 나의 마음은 늘 한쪽이 무거웠다. 정서적으로도 이미 10대 이후 애착관계에서 독립하는 과정이었기에 혼자 견디거나 동료, 친구들과 나누거나..
즉 20대 이후 부모의 도움과 원조를 제외한 타인의 도움과 신세짐을 통해 성장하고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누군가를 도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98년 IMF 직후 청년 실업률 12%는 그 이후 깨지지 않는 기록이고, 2018년에 드디어 청년 실업이 98년 가까이 왔다는 통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이십대와 그들의 이십대가 처한 일자리의 상황은 점점 더 비슷하고 앞이 막힌 상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정말 일자리가 없었다. 그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386들은 모를 것이다. 잘다니던 회사를 해고당한 것과는 다르게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그 상태를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20대와 나의 이십대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수십가지의 분석이 있을 수 있게지만, 오늘의 친구와의 대화 끝에 나는 크게 다른 한가지를 생각했다.


내가 IMF덕분에 서울에 와서 20년을 살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의 연결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동안 도와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다.
경주에서 전화 한통으로 서울로 가서 신세를 져도 될까요라는 전화를 걸고, 별말 없이 그래 와라라고 불편을 감수해주는 선배가 있고, 그 뒤에도 내가 어려움에 처하면 작든 크든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정서적으로도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 작은 위로와 앞으로 나갈 어깨 두드림.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고 혹은 함께 망해도 좋다고 웃는 동료들.
나를 도와준 사람준 사람들은 나의 부모가 아니었다. 부모는 나를 도와줄 여유가 없었고, 경주와 서울은 너무나 멀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어쩌면 부모 말고는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할 사람의 연결고리가 단절 된 것은 아닌지. 이것은 결국 자신만의 커뮤니티인 셈이다.(지역공동체 사업의 그 공동체가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형성하는 커뮤니티들이 연결된 상태이다. 개인과 개인의 연결..그 공동체, 커뮤니티)
주변에 친구들을 비롯한 선배, 혹은 이웃들이 있어 도움과 신세를 지고, 그 도움과 신세를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갚아가는 '기꺼이 지는 신세의 순환'을 연습하며 독립생활자로서 자신의 삶을 운영하는 등 성장의 연결고리가 몇가지가 더 있다면. 다른 기회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 얘기도 서울의 집값이 너무나 비싸서.... 선뜻 대안으로 내놓기가 참 어렵다. 나도 대안을 내놓을 만큼 여유로운 삶은 아니어서..ㅎ~)
그래도 여러 통로를 통해 서울 구석구석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며 먼저 손을 내미는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20년 전의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찾는 멋진 친구들이다. 릴라에 있는 수리야와 아타, 열매를 보라. 이런 친구들의 20대와 30대 현재 얘기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나의 얘기이자 사라지지 않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유전이다. 그럼에도 내가 누군인가를 찾는 그들의 시도와 도전과 모험은 너무나 아름답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의 도움을 부모에게 전하기도 한다. 나눈다는 것이 가난을 동정하거나 빚지는 것으로 여기는 전쟁세대를 부모로 둔 나와 달리 훨씬 더 큰 하트를 가졌다. 경의를!!
가슴을 다해 그들을 만나고 서로 도우며, 기꺼이 신세지며 살고 싶다.


쓰다보니 결국 사랑에 관한 얘기다. 보상과 갚음을 바라지 않는 한손 내밈과 기꺼이 신세질  있는 용기. 감사한 마음~
그리고 "우리는 다음 세대의 미래를 먹고 살고 있는데, 우리 다음 세대에 전해  것은 공동체의 가치뿐"이라던  프랑스 정치인이 마술소의 수고로움에 감동하며 던진 말을 다시 곱씹는다.
노동의 존중과 공동체 구성과 연결의 가치... 연말..
친구의 전화 한통이 여기까지 쓰게 만든다.
내게 도움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축복을 건네는 밤이다.


(2019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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