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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Oct 13. 2022

죽을 때까지 독립을 향해서

90년대 중반 문화과학에서 다룬 내용은 공간과 문화였다. 대학초년생이인 나는 공간을 이렇게 볼 수 있겠구나라는 눈이 틔여서 내가 다닌 대학의 동선과 전체 학교 건물의 배치를 살피기도 했고, 지나가면서 거리와 상점 그앞의 여러 물건들의 관계들을 혼자 상상하기도 했다. 공간에 대한 관심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살다보니 문화기획이란 것도 하게 되고 동네에서 공간을 운영도 해보고,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활동도 하게 되어서 더더더 공간과 예술, 공간과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나와 공간에 대한 생각은 더뎌서, 이번에 이사를 하고 한달이 다되어가니 겨우 지난 2년간의 내 생활과 릴라의 관계를 공간을 중심으로 생각을 시작했다. 우연히 2,3층이 빈 집을 발견하고 이사를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 운영자들이 과감하게 결정해서 계약을 했다. 편의와 상황에 따라 한 결정이지 어떤 의도와 철학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릴라와 분리해 보니 보인다. 릴라의 윗층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릴라에 매일 저녁 사람들이 오니 잠깐 쪼로록 내려가서 만나고, 필요한 얘기를 하기 위해 내가 별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릴라와 연결된 사람은 릴라로 오니까.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움직임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었다. 더불어 많이 걷지 않아도 되고, 식료품을 위해서는 1분이면 시장이 있고.


릴라와 분리해서 고양이들과 집을 구하고 보니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약속과 장소를 정해야 하고, 그것이 꼭 릴라이지 않다. 먹을 것을 사려고 해도 한참 걸어야 되고, 주변에 밥집보다 술집이 많아서 밥을 먹으려고 해도 걸어 나가야 한다. 대부분 릴라에서 만나다보니 다들 같이 아는 사이지만 나와 개인의 관계로 분리되지 않았다. 모임을 할 릴라와 만남이 이뤄지는 릴라와 내 삶이 연결되어 있는 릴라가 굉장히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상황에 따라 분리했지만 잘했구나 싶다. 분리되어서 많이 걷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걷고 움직이는 이 느낌이 오랜만이기도 하고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 그것을 잊었을 때 욕심을 부리고 고집을 부리고 당연한 것으로 쥐고 있으려고 하는 것일테지. 나역시 이 감각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지고 고개를 툭 떨어진다.


신화에서 분리와 떼어냄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는 상징은 생명의 태어남과 분리에서 나온 것인 듯. 그만큼 분리란 두렵고 인간을 불안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부모로부터의 분리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의 분리의 순간을 마주할 때 미친 무의식의 작동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제어 불가능할 정도의 순식간이고 검은 잉크에 잠식되어버리는.. 하, 죽을 때까지 이 역동의 반복은 끝이 없겠지. 신은 혹은 어떤 흐름과 에너지는 쟁반위에 나를 놓고 굴리는 것 같다. 한발 진전한 것 같으면 다시 원점에서 바라봐야하고. 여튼! 릴라가 사유를 주는 공간인 것은 확실하다.


새로운 , 새로운 공간에서 적당한 거리에서 부지런히 걸어서 다가가고 조금은 수줍고 조심스레 관찰하고, 만나기 위해 소통하고 만나는  서로를 배려한 자리를 만들고.
움추려  근육을 살살 펴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도~ 궈궈(하기에는 미세먼지 예보가 절대 나가지 말라고 하던데.)


(2019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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