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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Oct 13. 2022

기억과 추억의 차이

나는 스무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년기에 친구들도 있고 대자연의 품에서 자유롭게 놀기도 했지만 기질적인 낯선이를 기피하고 혼자 있는 시간과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기에 더 관심이 있었다. 사춘기시절은 어떻게 해야 이 이상한 세상에서 죽을 수 있을까, 죽을 수도 없다면 살아야 한다는 것인가의 절망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거칠은 욕망에 당황했다. 그 속에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은 대학을 가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포기했던 공부도 다시 하고 무사히 집을 떠나게 되었다.  

대학에서 내가 만난 것은 문학을 포함한 모든 장르의 예술과 학생운동. 무브번트는 무서운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모순투성이라고 느낀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강력한 욕망은(그렇게 하면 나를 힘들게 한 모든 것이 한큐에 해결되니까라고 쉽게 생각) 철옹성 같은 나만의 성, 울타리를 걷도록 나부터 변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가슴에 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나는 살기 위해, 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과 만나고 만나다보니 괜찮은 사람, 나를 아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배우기 시작했다. 인간으로서 첫 걸음마를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사람들 속에서 잘 보이지 않고 술은 한두잔이면 이미 만취에 담배는 꿈도 못꾸는 조용한 그를.

그는 참 드물게 조용한 사람이었다.

글자를 안뒤로 내가 거주하던 책세상에서 쌓은 공력은 대학사회에서 꽤 그럴듯한 능력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나는 그전 그후 어느 시기에도 찾아볼 수 없는 활력을 갖고 사람을 만나고 모임 일을 했다.  스물한살 초여름의 나는 조금씩 인간 속에서 사는 방법을 터특한 꽤나 스마트하고 고집있는 신입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속한 교지편집위의 일년 선배였다.

세월이 흘러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게 매력없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다는 내 의견은 여전히 팩트이다. 그렇다고 매력으로 인격을 평가하지는 않지만 매력이 있다 없다는 평가가 아니므로 넘어가자.


예술작품과 서사의 내러티브

예술 작품과 내러티브의 차이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과 더 낫고 나쁨을 말할 수 없는 차이에 대한 것이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를 말하고 싶다.

기억....

그는 매력적이지도 아름답지도 강렬함도 없는 사람이다.

추억...

그는 다정하고 나의 바닥도 지켜보고 기다리는 선한 사람이다.

전자는 팩트이고 후자는 나의 판타지이며 추억이다.


오늘 초반의 짜증남을 극복하고 배우를 믿고 본 드라마 '바람이 분다'를 보다가 극중 남주가 한 말에 으아아아아 고함을 질렀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한 한마디..

"너는 기억보다 추억을 더 많이 쌓으며 살길 바란다."

기억은 짧고도 희미하고 사실관계에 의해 의심을 받는다. 추억은 재해석되고 주관적이며 내 가슴속 감수성과 만나 그림으로 남는다.

기사로 남을 것인가, 예술로 남을 것인가.

이렇게 텍스트로 쓰기 전에 이미 그 말의 의미를 재해석하며 고함을 질렀다.

사실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렇게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 기억이 안긴 추억과 감수성은 이십년이 흘러도 매수간 재해석되어 마르고 닳도록 흘러넘친다.


고양이들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걱정스럽게 야옹양옹 울고 또 물끄러미 쳐다본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언니 괜찮앋."

안심시키고, 나는 술한잔을 꺼낸다.

나의 추억을 위해, 화수분 같은 봄날에 미친 듯 피다 부지불식 사라지는 개나리 꽃잎 같은 추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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