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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Oct 13. 2022

다만 아픔과 슬픔을  이용하지 않을 뿐...

_ 슬픔에 휩싸이지 않고 슬퍼하는 방법

 경상도식 장례식_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풍경


할머니 장례식에 도착한 할머니의 조카는(내게는 아주머니뻘) “고모야, 아이고” 장례식 복도에서부터 쩌렁쩌렁 곡을 하면서 뛰어왔다. 그리고 신발을 타닥 댑다 벗어버리고 슬라이딩하여 영정 앞에 쓰러져 곡을 하면서 울었다.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친척 어르신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나는 깜짝 놀라고 걱정도 되었다. 기우였다.

시간이 10분이 지나니 곡을 하는 조문객 옆에서 같이 곡을 하는 아버지가 되려 걱정이 되었다. 상주들인 아버지와 삼촌들도 어르신 옆에서 꼬박 30분을 같이 곡을 했다.

나중에는 ‘아, 어른들은 다른 사람 생각 진짜 안하네.’ 짜증도 났다. 보다못한 고모가 친척 어르신에게 다가가 “마, 인쟈 됐다. 언니야, 가자.”  일으켜 세웠다.

그분은 눈물을 손수건으로 주섬주섬 닦으면서 고모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야야, 느그(너의) 아는(자식은) 몇살이고, 결혼했나?”


옆애서 이 모든 풍경을 보던 20대의 나는 마지막 어르신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30분을 세상 무너진 듯 곡을 하고 일어선 사람의 첫마디가 평범한 일상적인 인사말이었으니. 그것도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고모의 아이들에 대한, 언제나 어디서나 할법한 그런 인사말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조문객석에 앉아 고모들과 웃어가며 옛이야기 요즘 이야기 쉴 세 없이 하였다.
장례식이 만남의 자리이니 간간히 웃는 것에 대해서는 이십대 즈음에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던 터라 적응을 하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조카와 비슷한 경상도 어르신들의 슬픔과 만남의 즐거움의 표현이 극과극이어서  장례식 내내 체할 것 같은 감정이었다. 어른들의 과한 곡소리와 이어지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
사랑하는 이가 죽은 엄청난 슬픔의 감정이 금세 잠잠해서 일상의 감정으로 바로 스위치를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었다.

내가 쓰러진 자리, 나보다 더 아플까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여러 사람의 죽음과 투병과 회생을 겪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숲길을 걸으며 아픈 사이 잃어버린 기억은 그렇게 흘러간다며 웃었다. 나도 3개월여 자리 보전하는 적당히 힘든 병을 앓았다. 상상을 해봤으나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고 처절했다. 병의 당사자가 되고 보니 누가 도와준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픈 나를 받아들이는데 타인의 슬픔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지인과 밥 먹으면서 내가 얼굴이 마비가 되니까 국한숟가락 깔금하게 먹지를 못하고 지지 흘린다라며 낄낄 웃는 편이 훨씬 나았다. 왜냐하면 매일 혼자 맞는 밤이면 사무치게 슬프고, 나를 돌아보니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한심해서, 한편 나자신 조차 돌보지 않은 '내'가 너무나 불쌍해서 미안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빌미로 자신이 더 슬퍼하는 사람을 마주하면 어쩌겠나 아유, 괜찮아요, 병원에서 치료만 잘하면 완치된다고 했어요. 걱정마세요. 되려 그 사람을 위로해야 했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겨우 버티는데 밥한끼 얻어 먹고 상대방의 슬픔을 위로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게 더 피곤해서 같이 낄낄 웃을 수 있는 사람을 선별해서 만났는데 그러다 보니 만날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을 꼬박 매일 병원다니고 완치 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 돌아오고, 다시 일을 할 준비를 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런 병과 마주한 자리에서 아, 나는 나를 위해서는 제일 크게 슬퍼해줄 수 있겠구나. 그런데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내가 아버지보다 슬펐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담담하게 사람들을 맞이했고 유난스런 경상도식 곡소리도 고마워했고, 상주로서 주는 술한잔을 거부하지 마시며 일상을 얘기하고. 아버지와 고모들, 친척들이 다 이생했던 내 자신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정말 슬프지 않았을까. 화장터에서 넋을 놓고 울던 아버지였는데, 나보다 슬펐을까. 장례식 내내 슬픈 얼굴로 찡그리고 있다고 해서 내 슬픔이 더 컸을까.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담담한 마음과 어떤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는 필수구나 알게 되었다.
힘든 사람보다 내가  아플  없는   슬픔으로 얼굴 찌푸리고 가는 것은 엄청난 결례이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과는 추억을 나누면서 서로 치유한다.
경상도식 곡은 크게 충분히 길게라는 관습이  유난해보이긴 하지만 그녀로서는 최선을 다해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고 상주들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마음이었다.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아픈 이를 만나면 즐거운 얘기 더많이 하고 걱정보다 오는 결과를 받을  있도록 슬픔으로 마음으로 좁아지지 않게 지지하는 방향으로 저절로 움직였다. 나와 친구들 모두.
 슬픔과 아픔을 대하는 태도가 숙련이  것이다. 세월이 먹는다고 그냥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닌  같다. 세월이 선물하는 경험이 나이를 먹게 한다.
아침부터 괜찮아, 마주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나는 나의 일상을 연다. 언제나처럼. 고양이똥을 치우고, 언니들과 집안 걱정을 하고, 돌아서서 고양이에게 뽀뽀하고 나들이를 간다.
그렇다고 내가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아픔과 슬픔을 이용하지 않을 뿐이다.

(2019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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