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어반소사이어티 이영민 대표 인터뷰
그리움이라고 첫 낱말을 써본다. 누군가 그립고 무엇인가 그립다고 말하는 마음의 상태는 각자가 다르겠다. 때로 아련하고 먹먹하고 혹은 가슴 저미기도 하다. 특히 준비 없이 갑작스레 영원한 이별을 했을 때, 사무치는 가슴에 그리움이 맺힌다. 이별을 한 그리움과 마주해 이야기하고 돌아설 때는 하루종일 심장에서 파도가 치는 것 같다. 오늘이 그런 만남의 날이었다.
해빗투게더협동조합(이하 해빗)의 첫 번째 시민자산화 건물인 모두의놀이터(이하 모놀)의 가능성 검토, 최적의 공간 찾기, 계약 후 리모델링을 함께 한 어반소사이어티(이하 어반)의 고 양재찬 대표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들은 4월 19일의 충격은 어마어마 했다. 드디어 모놀의 층을 비워 리모델링을 추가로 차차 진행했고 지하 공간을 상상하는 시기였다. 그의 탁월한 공간 디자인과 커뮤니티 감각, 온화하고 평화로운 성격에 많이 기대었다. 일을 떠나서 어반과 양재찬 대표는 더 이상 거래하는 업체가 아니라 지역의 동료로서 공동체의 공통 감각을 키워가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휩싸였다.
해빗과 어반의 협업으로 23년 봄부터 여름까지 리모델링은 그의 부재 속에서 계속되어 3층 미래미래와 2층 플랫폼:달이 이주하였다. 가을에 무지개 루버를 달고 모놀의 2단계 변화를 알렸다. 지하 목공 공간이 오랜 실랑이 끝에 이주하였고 여러 가지 논의와 실행을 해보고 마침내 지하다해(더커먼즈온 운영)라는 이름으로 24년 11월 펀딩을 시작하여 성공하였다. 어반은 모놀의 마지막 공간인 지하 공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 중 하나가 혼자 사는 3인의 공간인 스르르주택이다. 양재찬 대표의 옆지기이자 현재 어반의 대표인 이영민 대표와 어반 사람들이 겨울에 찾아왔다. 양대표님의 흔적을 정리하지 못한 마음이었지만, 남은 이들이 어반을 이어가려는 마음과 일 시작에 응원을 보내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날 스르르주택을 보고 싶어 했다는 이영민 대표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다렸기에, 그냥 아무 말 없이 으쌰으쌰 할 수 없어 돌아서는 그분을 붙잡고 꼭꼭 씹어 뱉은 말은 “그립지요?”였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이영민 대표는 “너무 그리워요.”라고 답했다. 짧은 한 문장에 그녀의 마음이 담겨 헤어지고 나서 먹먹해진 마음을 그 밤 내내 쓸어내렸다.
이번에는 드디어 해빗에서 그녀를 만나러 용산으로 향했다.
인터뷰 청하면서 양대표님이 언급이 될텐데 혹여나 슬픔을 건드릴까 조금 걱정이 됩니다. 그렇지만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대표님이 돌아가시고 사업체가 어떻게 되려나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어찌 되었나 궁금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같이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일단 대표님이 돌아가셔도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업을 접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분이 하던 일의 뒷정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 일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었어요. 일부 학교로 돌아가고 유학을 가는 등 진로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그만두기도 했어요. 어반은 건축 설계와 공간(인테리어, 리모델링 등) 프로젝트를 모두 할 수 있다는 강점이 큰 회사입니다. 어반소사이어티는 리모델링과 프로젝트 사업을 주로 하고 건축사 사무소의 사업은 황윤성 소장님 중심으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돌아가시고 손을 떼는 일도 있었지만 남아있는 일들, 완성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있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올해 광주 비엔날레에서 한옥과 마당을 복구하는 어셈블+비씨 아키텍츠+아틀리에 루마의 이코 한옥의 실험적 시공과 설계 과정에도 참여해서 한해 바쁘게 지냈어요. 연말에는 모두의놀이터 지하 공간 리모델링과 성미산학교 리모델링이 큰 몫으로 있어서 지금도 준비하는 중입니다.
어반소사이어티의 살림을 같이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제 내외부 일을 모두 책임지게 되었는데 전체를 보면서 다르게 보인 점이 있나요?
한 번도 양대표님이 하는 일을 반대하거나 걱정하지 않았어요. 돈은 건축과 이어지는 다양한 사업에서 벌려고 하면 벌 수는 있기에 묶이지 않았어요. 물론 돈이 많았던 것은 아니고요, 그럼에도 어반은 자유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양대표님이 큰 건축사 사무실을 그만둘 때도 그랬지만 커뮤니티 건축과 행정, 공공건물을 만드는 일에 함께 할 때도 '그래, 이런 사업 좋은 사업이야' 라는 생각은 했어요. 양 대표님의 건축 철학을 존중했고 같이 사는 옆지기로서도 그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연대, 소통, 관계를 인정했기 때문에 각 프로젝트들이 잘 운영이 되도록 정리하고, 영어로 설명하는 등 필요한 과정에 내 능력으로 지원을 했어요.
양대표님이 2019년 혁신파크에서 열린 공간 자산화프로젝트에서 발제를 맡아 사회혁신 디자인 얘기를 했고 그때 관련 이슈를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소통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해빗의 시민자산화 건물 프로젝트의 사업성 검토부터 같이 하였죠.
처음 모두의놀이터 건물을 검토할 때 아직 계약도 안 한 남의 건물에 뜬구름 잡듯 상상도를 펼친 것 같았어요. 그런데 결국 계약하고 실제 리모델링에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이 과정은 저도 옆에서 같이 지켜보았어요. 양대표님이 이런 연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의식이 없으면 이 일은 할 수가 없겠구나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계산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연대, 소통, 지속가능성 등 가치와 건축이 만나는 과정을 설계하고 계속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른 일은 공사가 끝나면 남의 집, 건물이라 다시 들어가 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공허감이 커요. 손을 딱 떼고 나오지 않으면 마음이 안 좋아져요. 그런데 커뮤니티 영역의 건축 사업은 어반이 그 뒷과정을 계속 볼 수 있어요. 간혹 개입도 가능해서 우리가 만든 공간에 사람들이 어떻게 무엇을 채우는지, 어떤 문화를 만드는지 살아 숨쉬며 이어가는 과정을 함께 만들 수 있습니다. 양대표님이 애써 만든 공간들이 정책이 바뀌면 사라져 버리는 순간을 목격하고 슬퍼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민간에서 만든 공간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좋아했습니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도 같이 많이 했어요. 섬에 들어가서 작가들과 같이 시공하고 만들고. 아티스트들은 굉장히 솔직하고 순수하거든요. 그분들과 작업하면서 업계에서 트러블 생기면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으셨던 것 같아요.
내가 대표가 되어서 전체를 보니 양대표님이 왜 이런 프로젝트(돈이 덜되고 힘이 드는 리모델링)를 사람들과 같이 하려고 했는지 더 알게 되고 그럴수록 대표님이 생각이 납니다.
양대표님이 돌아가시기 1년 전, 음.. 2022년 즈음 "난 할 거 다 했어."라고 했어요. 공공미술 프로젝트, 시민자산화 건물 리모델링, 커뮤니티 건축, 공공 공간 프로젝트들을 다양하게 해낸 시점이었어요. 해빗을 비롯한 커뮤니티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이제 좀 힘을 실어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대표님이 살아있을 때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하니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고 준비를 해보라고 많이 얘기했는데 그때는 이렇게 떠날 줄 몰랐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했는데, 결국 양대표님이 말한 대로 다하고 있어요. 남아있는 사람들도 사무실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해내기 위한 자격을 채워나가고 있고요.
대표님은 용감하고 도전하는 분이시네요. 아무리 옆지기가 남겨 놓은 일이라 해도 내가 해볼 용기가 없다면 정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떠난 사람의 뜻과 마음을 이어가려는 대표님, 어반과 함께 해빗도 모놀 마지막 공간인 지하를 완성하려고요.
그런가요.(웃음) 조금씩 더 용감해지는 상황입니다.. 내가 전공자는 아니지만 남은 식구들 챙겨야 하고 아이들도 돌봐야 해요. 일로서 정면돌파 하면서 삶이란 또 이렇게 서로 영향을 미치는구나 싶어요. 대표님이 떠나면서 잃은 것도 많은데 얻은 것도 되게 많아요. 제 삶은 조금씩 더 완성이 되어가는 것 같고 미뤘던 것, 그에게 의지한 것을 이제는 내가 판단하고 책임지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을 같이 기억하면서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말씀해 줄 수 있어요? 같이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저희도 모놀의 루버를 세우면서, 지하 공간을 비우면서 대표님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돌아보면 안타까운 것 하나가 있네요. 양대표님이 1년 정도 쉬면서 책을 쓰고 싶다고 했어요. 그동안 만든 작업과 사업을 돌아보면서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는 과정이 되었을텐데 기꺼이 해보라고 밀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건축일을 하다 보면 소송도 걸리고 험한 일도 많아요. 새벽까지 일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어떤 날은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할 거 다 했다고 했어요. 내가 답답해서 더 큰걸 해야지라고, 일이 들어오는데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좀 쉬어야 할 때 그 틈을 벌려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일하면서 힘든 마음을 해빗투게더와 커뮤니티 사람들 만나서 위안 받았고, 그 힘으로 커뮤니티 건축, 공간 사업을 했어요. 작은 힘들이 모여서 이뤄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어반에게도 힘이 되었어요. 우리도 해빗과 커뮤니티들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남은 자리를 살피는데 남편으로서 건축사무소 대표로서 양대표님은 참 정리를 잘해놨어요. 그 사람을 더 많이 알게 됩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어요. 사람이 잔소리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깨달을 때가 되면 깨닫는 것 같아요. 스스로 알아야 하는 때를 기다려주려고요. 내가 사랑을 하면 다 퍼줘도 괜찮아요. 그 사람이 있을 때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혼자 가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어반소사이어티도 어떤 방향으로 어떤 컬러가 더해질지는 몇 년 해나가면서 알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부족한 면은 지금까지 관계 맺은 사람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채우려고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해빗투게더협동조합과도 계속 만날 것이고 서로 힘이 되는 관계였으면 합니다.
인터뷰 _ 삐삐, 최졔
정리 _ 삐삐
사진 _ 어반소사이어티
발행 _ 해빗투게더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