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지우기 시작하다
태어나기 전부터 안신약국은 있었다. 큰언니가 한살 되던 해 다니던 외국계 제약회사를 때려치운 아버지는 할머니의 고향인 현재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로 내려왔다. 시외버스가 서는 면소재지 큰길가에 편할안, 믿을신 안신약국을 열었다.
작은언니와 나는 약국에 딸린 집의 주인이자 산파인 주인 할머니가 받아줘 집에서 태어났다. 유치원을 갈 때도 두어정거장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집앞에서, 내리는 것도 집앞으로. 학교에 가던 날은 엄마 손을 잡고 손수건을 달고서 집 근처 양남초등학교(현)에 갔고, 중학교도 초등학교 담하나에 기대어 있으니 거기서 거기.
학교 끝나고 뛰어와 약국 뒷방에 가방을 던져놓고 여름이면 우묵을 시원하게 마시고 겨울이면 아버지가 우리 올 때 즈음 구워놓은 고구마와 군밤을 먹으며 약국의자에 걸터 앉아 있었다.
컬러텔레비젼이 들어오자 5시 부터 1시간 동안은 어린이 프로그램이라 약국 간이 의자에 앉아 정신줄을 놓고 봤다. 얼리어답터인 아버지가 엄마 몰래 구입한 비디오 플레이어로 만화 영화도 가끔 봤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약 캡슐과 디자인을 보고 아버지에게 이것은 무슨 약이냐고 곧잘 물었다. 한달에 한번 제약회사에서 보내는 사보를 다 모아놓고 최신 의료, 약 정보와 부록으로 실은 문화예술 관련 이야기를 샅샅이 다 읽었다. 덕분에 우리 동네에서 AIDS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사고를 하였다. 어른들이 이상한 얘기를 하면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반박을 하다가 어른들에게 대든다고 엄마에게 신나게 맞았다.
고등학교를 울산으로 진학하고 대학을 가고. 어머니가 쓰러진 후 25년여 아버지가 그래도 약국을 하셔서 우리가 다같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의약 분쟁과 IMF로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약국을 계속 운영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방학이나 학기 중에 어머니가 입원을 하게 되면 학교를 다니면서 병원을 생활을 같이 했다. 병에 적응하는 시간이 꽤 필요한 어머니여서 졸업할 때까지 병원에서 자는 날이 꽤 되었다.
서울에 와서도 아버지가 약국을 하면서 어머니를 계속 돌봤고 시간은 뚜벅뚜벅 흘렀다.
어머니가 긴 투병 끝에 2019년 여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지난 25년의 시간을 지탱하던 안신약국에 혼자 남았다. 이제 좀 아버지가 편해졌겠구나 당신 건강만 좀 챙기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다. 한해가 넘어갈때마다 아버지가 눈에 띄게 안좋아지기 시작했고 몸이 힘들어지니 살림과 약국을 돌보는 손길이 둔해졌다. 아버지에게 자식들이 약국을 정리하는 얘기를 슬쩍 했지만 오히려 일이 없으면 더 안좋을까봐 강하게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앞으로 6~7년은 더 안신약국을 소일거리 처럼 하는 동안 살살 달래서 일을 접도록 해야 할텐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경상도 불뚝고집인 아버지를 설득시킬 자신이 있는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포기하는 어느날을 기다릴 밖에.
주말 큰언니의 황급한 전화. 아버지가 안좋아서 내려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올해 내내 아버지가 안좋았고 나중에 당신 입으로 쓰러진 얘기도 하셨다. 병원에 가기 싫어서 숨겼던 모양이다. 몇번은 화를 내기도 했고 몇번은 달래기도 했지만 제대로 몸을 쓰지도 못하면서 남의 도움은 받기 싫은 자존심만 살아서 다 거부하셨다.
결국 지난 주말 아버지는 결국 자식들과 남매들의 손에 떠밀려 요양원 입소를 하셨다. 돌아서 나오는데 바위같던 아버지, 안신약국 허약사인 아버지는 그저 키가 큰 할아버지가 되어 휠체어를 타고 들어갔다. 면회도 1인 이상 되지 않는 상황이라 조금 시간이 지나서 뵈러 가야할 것 같다.
사남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허약국집 딸들은 바빠졌다. 아버지가 통장 번호도 잊어버렸고 약국의 폐업도 일반 사업과 달라서 보건소를 거쳐야 한다는 특수성도 있어서 오늘 아침부터 작은언니가 전담해서 조사해본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작은언니는 매우 빠르다. 그래서 오늘 폐업 신고를 했다.
이제 안신약국은 더이상 없다. 나의 놀이터였고 아버지의 일터이자 목숨줄, 자존심 그자체인 안신약국은 이제 없다. 12월 중 어느날 내려가서 약을 정리하고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려고 일정을 잡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고향집은 연말 즈음 사라질 예정이다. 내 고향은 이제 내 가슴에만 남을 예정이다.
예상치 못한 변화와 사라짐 앞에 언니들과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다가도 서로 기분이 이상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안신약국이 이제 없다며.
PS : 오늘을 일기처럼 주절거리면서도 남겨둬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끄적거리며 오래된 우리집 사진과 사남매 사진을 꺼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