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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Oct 14. 2022

자리

_ 김소희 작가의 만화책 자리 리뷰


감상을 잊어버리기 전에 감상문을 써둔다.


서울에서 집을 보러 다니면 절로 이런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이 넓은 땅에 내 한 몸 늬일 자리가 없구나.” 계약 만료 시즌이 오면 겁부터 난다. 아.. 이번에는 어떤 컨셉으로 부동산 아저씨의 말에 대응해야 하나.


김소희 작가의 만화책 ‘자리’를 보자마자 아, 제목 참 기가 막히다고 웃었다.작가의 이십대를 그린다면 대게 작업을 둘러싼 상황이 메인으로 등장하는 걸 생각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작업실을 중심으로 송이와 순이 두 여성 작가의 작업과 생활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울의 그림자처럼 담긴다.


공간이란 네모난 물질이 아니다. 공간을 구성한 주변 환경과 살고 있는 사람에 의해 생명력을 가진다. 그런데 가진 것 없는 두 청년이 집을 구하는 공간은 당연히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구성한 곳일 수가 없다. 그들이 선택한 초기의 오류들이 과연 그들의 오류였을까.  사람을 생각지 않은 공간도 공간이라고 돈을 받는 서울의 그늘이다.


한해 두해 조금씩 공간을 찾는 경험은 쌓이지만 현실은 시간만큼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는 경험 모두 해봤을 것이다. 끊임없는 실패와 좌절이 쌓이다가 어느날 돌아보면 저때보다 그래도 지금이 훨씬 낫지라고 회고하게 된다. 저때와 이때 사이에서 끙끙거리며 밀고 간 과정은 지나간 시간이 된다.  


‘자리’는 저때와 이때 사이의 시간을 탈탈탈 꺼내서 햇볕에 말려서 보여준다. 그렇다고 희망찬 아름다운 내일을 예고하지도 않는다. 순이는 여전히 아프고 송이는 여전히 현실과 이상 속에서 웃지만 운다. 다만 그녀들은 사는 법과 견디는 법과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작업인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더 많이 알게 된 것이다.


‘자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몀 여성의 전 생애가 곳곳에 숨어서 툭툭 튀어나온다. 싱크대 옆 화장실처럼 말이다. 이 주변 인물들의 서사들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명품가게 아줌마, 오뎅가게 할머니, 옆 작업실 언니, 백구언니, 순이 엄마, 순이 아빠, 집주인들.. 이들의 이야기는 짧게 지나가지만 상상을 하게 된다. 그들의 삶을 어떠했을까.


두사람의 서울의 작업실 풍경에 얹혀서 각자의 청춘을 꺼내 볼 사람이 많겠다. 그런데 이 풍경이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 지금의 이십대들이 겪는 거대도시 서울의 그림자가 다르게 생겼을까.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이 혼자서 생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면 마찬가지로 가난한 골목길 귀퉁이에 청춘을 꾸역꾸역 살고 있을 것이다.


김소희 작가는 그들에게 견디면 잘 될거야라고 서툰 희망고문을 하지 않는다.(이게 제일 좋다)송이는 아끼는 이들과 갈등하고 믿었던 이들에게 뒤통수를 맞고 자신에게 실망한다. 덫에 걸린 발 같은 상황을 견디려 돈을 버는 방법도 알게 되지만 내가 하고 싶다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만화적 상상력을 쫓아가는 손을 잡아줬다. 자신의 손을 말이다.  그녀로서는 살아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순이 역시 몸이 아프면서도 결국 그려야 자신으로서 살 수 있었다. 김소희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이며 이 시대 청춘들의 모습 중 하나인 송이와 순이의 선택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다.


어제와 내일 사이를 부대끼며 그래도 마음이 가는 곳에 나를 놔두는 선택을 한 두 작가의 삶.그뒤 작가로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시간 또한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별 희한한 현실이 끼어들어 황당함과 황망함 사이를 오고가야 했겠지. 30대, 40대의 이야기가 보고 싶다


삶은 아름답지 않다. 가끔 햇살 같은 하루 덕에 한 몇년을 이어가기도 한다. 햇살은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때는 잘 몰랐고.


그래서 참 다행이다. 행복을 탐하지 않지만 오늘 하루 무탈해서 다행이고, 사랑할 수 있는 고양이와 마음을 얘기할 친구가 있어서. 무엇보다 어려울 때 손내밀 수 있는 용기를 장착하게 되어서. 내가 손내밀어 신세를 져봐야 다른 사람의 신세를 받아줄 수 있다. 그것을 알려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갚을 신세가 많다. 그대로 그분들께 다 돌려드리지 못하지만 지금 내 옆의 사람들에게 갚고 있는데 아직 멀었다. 그때 고맙다고 인사도 제대로 못한 마음까지 포함하면.... 생각나는 이름이 많지만 가슴에 잘 넣어둔다.


무엇보다 내 삶을 내가 방치하지 않고 돌보게 되어서 나 자신이 참 다행이고, 무조건 사랑을 알려주러 온 우리 고양이 아띠와 루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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