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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Apr 18. 2024

기억은 힘이 세지

제대로 마주하는 416, 기억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

근래 조금씩 기억이 옅어지고 자주 깜빡한다. 농담 삼아 "아우, 나 총기가 떨어졌어."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웃기도 한다. 십 대, 이십 대의 기억력을 떠올리면 내가 그랬나 싶을 정도다. 영화 한 편을 보면 출연진 이름, 감독 이름 하나 들어도 연도까지 기억하며 필모그래피를 읊었다고 말이야, 라떼 감성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기억, 선명하게 박힌 기억은 여럿 있다. 떠올릴 때마다 숨이 가빠지고 마음이 축 떨어지는. 떠올리고 있지 않다가 어떤 장면 속에서 갑자기 떠오르면 호흡 곤란이나 구역질이 올라오는 기억. 이런 심리적인 현상을 빚는 기억을 트라우마라 부른다. 의식하기 전에 몸에 이상증상이 일어나는 기억이다. 


많은 사람들이 2014년 4월 16일로부터 적어도 JTBC 기준 200일 생중계를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보며 같은 상처를 가슴에 담았다. 한 개인으로서 상처가 이렇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느 정도일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아직도 팽목항과 배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 서있는 그분들의 삶의 변화를 누가 보상해 줄까. 


지난 10년 동안 매년 4월 16일이면 우울하고 속이 안 좋았다. 그렇다고 슬퍼요!!! 이럴 수도 없다. 누구보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매년 기억하고 있습니다 표현을 하는 것으로 그날의 죽음을 들고 책임자를 밝히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쓰는 그분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다였다. 집회 참여도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세월호와 416에 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현실이 무거움을 크게 느끼는 날이었다. 

작년 아바타 2를 본 날은 깜짝 놀랐다. 배가 수직으로 기울고 배 안의 물건이 떠다니는 장면이 연출되어 영상으로 나왔는데 그때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자리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막바지 부분이라 끝까지 버티고 나왔다.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서 구토를 했고 너덜너덜 해져서 집에 갔다. 영화 속 그 영상에 바로 세월호의 영상이 얹힌 것이다. 아, 이거 트라우마가 되었구나. 10년이 다되어가는데 이렇게 바로 떠오른다 말인가, 난 당사자도 아닌데.


올해 초부터 416 10주기를 맞이하여 4,160명의 합창 '세월의 울림'을 영상과 현장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합창이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해 본 적이 없고 두성을 쓰는 노래 방식이 어색해진 지 오래라 내가 부를 수가 있나 망설여졌다. 그러다 동네 친구가 뭐라도 하고 싶은데, 아무리 바빠도 416 무대에서 살살 노래는 부를 수 있지 않겠니라고 정신 번쩍 드는 말을 했다. 

그렇지, 뭐 내가 가수도 아니고. 뭘 그리 완성도를 생각하는가 싶어 냅다 신청하고 한두 번 동네 공간에서 연습하는 시간에 참여했다. 과정이 슬프고 우울하지 않고 우리는 시종일관 즐거웠고 건강한 마음이었다. 

나부터 어, 알토 화성 못한다, 목이 째져도 소프라노 해야 된다며 갑자기 성악가처럼 입을 둥굴게 소리는 저 단전에서... 집에서 가이드 음악을 틀어놓고 연습을 고래고래 하면 우리 고양이들, 특히 아띠가 눈이 동그랗게 조금 불쾌하게 '언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쳐다봤다. 난 그러면 읍소한다. '얘들아 미안해!! 그런데 언니 연습해야 현장에서 뻐끔거리는 걸 줄일 수 있어. 최선을 다하고 싶다!! 좀 봐주라.'

왜 이렇게 연습을 혼자서 많이 했냐면. 사실 노래의 복병이 있는데 눈물이었다. 부르다 보면 주책맞게 눈물이 펑펑 터져서.. 아무리 지금 공연 기획을 하지 않지만 무대에 오른 사람이 우는 모양은 진짜 별로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공연으로 닦아주는 것이 공연자의 몫이라며 혼자 많이 불러서 눈물을 빼야 한다는 어떤 공연의 완성도를 갖추겠다며. 그럼 뭐하나, 가사도 다 못 외우고 핑계라면 앞에 말한 것 처럼 총기가 떨어져서...


4월 16일, 아침 일찍 대절 버스를 타고 다시 연습의 연습을 하며 안산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향하는 길에 내리던 비도 어느덧 걷히고 안산 화랑유원지 주차장의 무대를 보았다. 전국에서 720여 명 현장에 모인다고 한다. 이거 줄 세워서 동선 잡는 것부터 일이었다. 지휘자인 쉼표(박미라)는 입술이 다 터졌지만 능수능란 동선에 맞춰 사람들을 줄 세우고 등퇴장 연습을 시키고, 멜로디 리허설까지 완료. 그리고 다시 한번 공연자들과 전체 리허설까지 하고 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정치인들에게 첫 줄을 내어준 유가족들의 마음, 행사자 바깥에서 이 행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확성기 소리. 다양한 풍경과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갔지만 노래로 오늘을 갈무리하겠다는 마음으로 기억식에 집중했다. 중간중간 사람들의 이야기, 유가족들의 영상에 눈물이 쏟아지는 걸 그대로 뒀다. 지금 다 울어야 한다! 무대에서 울지 말고 노래로 마음을 전해야 한다.

늘 무대 밑에서 왔다 갔다 진행하는 역할이었다가 큰 무대에 오르려니 아이처럼 긴장이 올라서 다리에 쥐가 나듯 뻣뻣해졌다. 역시 무대는 내 몫이 아닌 듯.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들, 세월호 참사 가족들에 눈이 가면 마음이 무너지는 듯해서 제일 앞줄의 정치인들을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다. 총선 직후여서인지 진짜 많이 참석했구먼. 잘해라, 제발 좀 이런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쏘옥 들어갔다. 

친구들에게 "야, 내 손수건은 정치인들이었어. 덕분에 끝까지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니까."


이틀이 지난 오늘 생각해 보면, 합창단을 해서 다행이었다. 세월호 참사 가족과 진상 규명을 위한 행위이자 기억하는 행위이긴 하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무력해지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트라우마에 사로잡히지 않고 뭔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마주할 수 있게 숨통을 틔여주는 과정이었다. 내년에도 4월 16일은 돌아올 것이고, 그 사이 변화가 있는지 늘 유가족과 함께 지켜보고 발언해야 할 때 발언하고, 손을 얹어야 할 때 손을 얹고. 무엇보다 무뎌지거나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상처에 사로잡혀 외면하지 않도록 건강한 에너지로 직면하면서 시간을 같이 견뎌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행위일 것이다. 올해는 이렇게 4월 16일을 보냈고, 바람의 세월을 보러 극장으로 곧 갈 것이다.


밀린 세월호 10주기 언론사 기사들을 모아서 보았다. 어마어마한 상처를 안고도 파고들어서 현실을 마주하고 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양안전연구소를 차린 전직 과일가게 사장님인 희생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참사의 원인을 찾겠다는 끈질긴 집념이 다른 이들의 고통을 막겠다는 마음으로 바뀌는 과정을 기록한 기사였다. 그 기사를 보면서 마더피스 타로카드의 20번 Judgement(심판) 카드가 떠올랐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 단죄하는 것을 넘어선 사랑으로 세상을 구하는 자비를 뜻하는 카드이다. 스스로 상처를 끌어안고, 죄를 지은 자들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도 사랑의 마음으로 지구와 사람을 구하는 카드, 사람이 감당하기에 큰 의미를 가진 카드여서 설명할 때 어려워서 매번 어버버하게 만든다. 직관적으로 바로 카드 이름이 유가족의 얼굴에 겹쳐졌다. 그 과정에 흘린 피눈물이 빛으로 승화된 그분의 삶을 잘 이어갈 수 있게 사회가 응원하고 지지하기를!! 고맙습니다!!

마더피스 타로 20번 'Judgement'



#416 #세월호참사 #기억은힘이세지 #뭐라도할수있어서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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