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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Apr 21. 2024

로자와 도로시가 될 뻔했지만

_ 친애하는 나의 고양이 자매에게 pre2. 고양이 이름에 얽힌 사연

#동작구 출신 길냥이들

우리 아띠와 루카는 입양기준이 엄격한 고양이 동물 보호 단체인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이하 고보협)'에서 구조한 고양이다. 동작구 남부수도사업본부의 나비가 낳은 아이들 중 둘을 입양하였다. 

아띠와 루카의 엄마 나비

엄마인 나비는 TNR(고양이 불임수술)을 마치고 회복한 후 원래 장소로 돌아갔다. 그래, 그곳에 돌봐주는 사람이 있지 하면서도 애들 엄마여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몇 년 전 고양이 페어에 갔다가 입양홍보 부스를 운영 중인 고보협 활동가들을 만났다. 나비가 조금 아팠는데 구조해서 지금은 공주님처럼 지낸다고 전해주었다. 그날 알아듣지도 못하는 두 아이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얘들아, 너희 엄마 입양되었데, 지금은 공주처럼 지낸데, 너무 다행이지? 너무 다행이야. 그치그치?" 

구조한 활동가의 집에서 임시보호 중. 거의 2개월령쯤이었을 것이다. 한 달 뒤에 나에게 왔다.


이번 이야기는 입양준비하던 때의 이름 때문에 고군분투한 기억이 나서 바보 같지만 열정 넘치던 초보 집사 시절의 경험을 적어보려 한다.  고양이 입양한 사람이면 누구나 했을 웃픈 기억 중 하나이다.

2014년 아이들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때는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와 같이 살았고 지역에서 커뮤니티 문화예술공간인 공간릴라를 운영하고 있었다.(공간은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있음) 저녁 시간 주로 사람이 찾아오는 공간이었기에 주말과 낮, 밤시간이 조용하기 때문에 우리 공간에서 고양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니까 동네친구들과 공동육모와 같이 조금 쉽게 책임을 나누려 했지 않았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바보야 혀를 끌끌 찰 생각이었다.(이 얘기는 길게 다음에 한번 다뤄보려고 한다. 부끄러운 자기 고백 같은 것.) 우리 공간이 집을 개조해서 운영했고, 대체로 조용한 곳이라 아이들을 충분히 보호 가능했기에 고보협에서도 고민을 했으나 믿고 아이들을 입양시키기로 결정했다. 


# 간지 나는 이름 포기하는 이 마음, 누가 알까

또 다른 장이 열렸다. 임보를 마무리하고 아이들이 내게 올 날을 기다리는 동안 공간을 재구성하고 물품을 갖추는 환경 조성을 하는 기본적인 입양 준비는 당연하고. 밤잠 설치며 이름을 고르는 삽집을 시작했다.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순한글, 한자 조합 온갖 예쁘고 의미 있는 이름을 골랐다. 공간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혼자 상기되어서 물어보기도 하고 밤이 되면 맘에 안 들어 다시 이름을 고르며 만날 날을 기다렸다.

고심 끝에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과 영화감독 이름을 골랐다.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와 '파니 핑크'를 찍은 도리스 되리 감독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정치적인 이유로 구속되어 감옥살이를 할 때에도 꽃을 키우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다. 도리스 되리 감독은 오랫동안 그녀의 영화를 사랑했고, 여성영화제의 감독과의 대화에서 실제로 볼 기회도 있었다. 커트헤어에 티셔츠를 입은 스타일이 소탈한 멋이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을 고르고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그날 밤은 푹 잤다


드디어 마음을 먹고 공간릴라의 친구들과 밥 먹는 자리에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알렸다. 이름은 태비 무늬는 로자룩셈부르크의 로자이고, 턱시도는 도리스 되리의 도리스야라고 야심 차게 발표했다. 친구들이 아연실색, 웃는 듯 마는 듯, 난감하지만 웃기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좋지 않아? 그녀들처럼 멋있게 한평생 살라는 의미인데.."

침묵이 흘렀다. 나의 신남을 꺾는 것 같은지 친구들이 머뭇거리는 기색이 완연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용기를 내었다.

"삐삐, 이름이 참 멋있네. 그런데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지막 죽음이 좀 그래. 동료들이 살해해서 하수구에 버렸다구. 결말이 안 좋고 너무 큰 사람 이름을 붙이면 팔자가 드세진다잖아.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즐겁게 살게 가벼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때? 귀엽고 예쁘게."

"그리고 부를 때 세 글자 보다 두 글자가 훨씬 입에 잘 붙고 아이들도 금방 자기 이름인 걸 알 거야."

실망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 그 말이 고맙지만 난 시무룩해졌다. 몇 날 며칠 이름 때문에 고심하고 고민했는데, 가벼운 이름을 붙이라니....!! 그렇지만 친구들 말이 맞으니까 반박을 못하고 다시 생각해 보겠다 했다. 속으로 아니, 나의 고양이인데 내 맘대로 못하나 싶고 한편 기호에 항상 의미와 스토리를 담으려는 습관이 애들의 삶을 무겁게 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들기도 했다.


# 루카와 아띠, 결국 가볍지는 않았다

진짜 아쉬웠다. 그럼에도 애들을 생각하며 로자와 도리스는 일단 포기. 다시 이름 찾기에 나섰다. 우연히 'My name is Luka'라는 노래를 듣다가 이름 예쁘다 루카! 그래 루카를 한 아이에게 붙이고 배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갈 자매가 평생 사이좋은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 친구의 순한글인 '아띠'로 정했다. 친구들은 모두 두 손 들어 환영했고,  좋다 좋아하면서 함께 신났다.

문득 노래 속의 루카는 어떤 사람이지 가사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My name is Luka'는 87년 수잔 베가가 부른 노래로 아동 학대에 대한 노래였던 것이다. 오메, 의미를 찾는 내가 본능적으로 이런 이름을 골랐구나. 노래를 다시 듣다가 이렇게 서정적인 곡에 아픈 이야기라니. 오랜 세월을 들은 노래인데, 몰랐네 하는 미안함 마저 들었다.


My name is Luka 제 이름은 루카예요 I live on the second floor 2층에 살지요 I live upstairs from you 당신 집 바로 위층이요 Yes I think you've seen me before 그래요, 전에 한번 본 적 있어요 If you hear something late at night 밤늦게 말썽이 생긴 것 같거나 Some kind of trouble. some kind of fight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도 Just don't ask me what it was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말아 주세요 Just don't ask me what it was 별 일 아니니까 Just don't ask me what it was 아무것도 묻지 말아 주세요 I think it's because I'm clumsy 제가 잘못한 일이거든요 I try not to talk too loud 조용히 말해야 하는데 Maybe it's because I'm crazy 아마 제가 좀 어리석었나 봐요 I try not to act too proud 주눅 든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They only hit until you cry 아래층에서 소리 지르면 더 이상 안 때려요 And after that you don't ask why 무슨 일이었는진 묻지 마세요 You just don't argue anymore 더 이상 설득하려고 하지 마세요 You just don't argue anymore 제가 잘못한 거니까 You just don't argue anymore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해주세요 Yes I think I'm okay 네, 전 괜찮아요 I walked into the door again 다시 들어가 봐야 해요 Well, if you ask that's what I'll say 만약 다음에 또 물어오시면 And it's not your business anyway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말할 거예요 I guess I'd like to be alone 이제 혼자 있고 싶어요 With nothing broken, nothing thrown 부러지지도 않았고 삔 곳도 없어요 Just don't ask me how I am 제가 어떤지는 묻지 마세요 Just don't ask me how I am 아무렇지도 않으니 Just don't ask me how I am 더 이상 괜찮은지는 묻지 마세요 ( My name is Luka 가사 전문)


이름을 다시 정해야 하나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문득 우리 고양이들이 노래 속의 루카 같았다. 작은 고양이 식구 다섯이 큰 수도사업장에 살았는데, 규모에서 비교가 안된다. 수도사업장, 수도사업 본부는 거대한 공장이어서 고양이 두어 마리 정도는 티도 나지 않는데 공생이 싫은 사람들이 거의 협박을 했다고 들었다. 돌보는 사람들에게 빨리 안 치우면 잡아서 보호소에 보내버린다고 말이다. 

공공 동물보호소에 가서 입양이 되지 않으면 보름 혹은 한 달 뒤에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보호소에 보낸다는 말을 하면 그 고양이 죽여버리겠다로 들린다.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단체와 고양이를 보호하는 개인, 온라인 카페 등 입양 대기 중인 고양이들을 찾아보면서 알게 된 현실이었다. 

앞으로 나에게 올 아이들과 사는 삶은 길에서 오는 아이들의 삶을 살피는 삶이겠구나, 이유도 모른 채 폭력을 당하는 존재를 위한 실천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냥 루카를 턱시도 애기 고양이에게 주기로 했고, 아띠는 자연스럽게 태비 무늬에게. 

이 예상은 맞았다. 루카를 부를 때마다 내 마음에는 동물권이라 부를 만한 생각들이 같이 따라온다. 아직은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한국에서 길냥이 출신 자매 덕분에 새로운 세상이 맞이했다. 아직 잘하고 있다 자랑할 수도 없는 어정쩡하고 마음만 있지 실천은 늘 부족하다. 인간이어서 세상의 동물과 지구에게 계속 미안함을 자각하며 살고 있다.

내 삶은 이렇게 루카와 아띠를 만나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약 30도 이상 양쪽으로 더 넓어졌다. 보이는 게 많아지니 몸이 향하는 곳도 달라지고, 몸이 향하는 곳이 달라지니 마음도 다르다. 전환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람 중심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아이들의 나이만큼 마음이 더 깊어지고, 동물권에 대한 생각은 더 강렬해진다. 

생명과 인연을 맺음으로 한순간에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 한국의 현실을 매 순간 현타 오도록 봐야 한다는 참 불편한 삶이다. 자신을 내맡겨도 좋을 불편함이다. 개인적이고 혼자만 생각해도 되는 사람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존재에 관해 사유를 하고 성숙하도록 고양이들이 이끄는 불편함의 길이다. 2014년 6월 5일 처음 만난 조그만 아기 고양이들, 우리 아띠와 루카. 10년이 되어가는 오늘도 나에게 와줘서 고맙고 더불어 아이들을 낳은 길 위의 엄마 나비의 건강한 냥생을 매일 기도한다. 

동네친구들과 함께 지은 이름을 불러본다. 아띠야, 루카야 사랑해.

_사족이지만, 가끔은 로자와 도리스를 붙였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여전히 미련이 남는 이름이다. 누가 쓴다고 하면 기꺼이 드리겠다. 쩝.


(2024. 4. 21 일요일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4달을 백수처럼 지내서 애들은 신났다. 아띠야, 보호장치를 했지만 거기 그러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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