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나를 위한 선택과 움직임, 일하는 여성 자민
이 글은 마포구 성산동의 해빗투게더의 시민자산화 건물 1호
'모두의놀이터'의 '모놀 Life' 시리즈 중 2편입니다.
해빗투게더협동조합의 모두의놀이터(이하 모놀)는 사거리의 모퉁이에 건물이 있다. 모놀에 사는 사람들은 밥 먹으러 나와서 일단 대로변으로 바로 나가지 못하고 방향을 잡느라 한참 1층 SCC 앞마당에서 서성거린다.
선택과 갈림길은 이런 밥자리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에 한두 가지 아쉬운 선택이 있고, 기가 막히게 딱 잡은 선택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다양한 선택의 공통점은 ‘내’가 한다는 것이다. 온전히 나의 선택이며 과정과 결과 역시 내가 책임져야 한다.
돌아보면 누가 조금 도와줬으면,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려줬으면 덜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렇다 해도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덜 힘들었을 것’의 행간에서 외로움을 읽는다.
자민이 선택한 여정과 갈림길을 같이 걷다
모놀 3층 ‘미래미래’는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와 ‘우리가만드는미래’ 두 여성기업의 일공간이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이하 여미래)는 이름에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일하는 여성이 만들 미래를 위해 일하는 여성이 되도록 지원하고 방법을 같이 찾는 단체이다. 야심 차다. ‘세상의 모든 여성은 일을 한다’는 설정 없이 이런 제목이 나올 수 없다. 요즘같이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희한한 세상에서 표적이 되기 딱 좋은 이름이지만 망설임 없는 선택같아 통쾌하다. 여미래의 기획자이자 실무자인 자민을 이야기 자리로 초대했다. 자민은 어떻게 ‘여미래’를 선택했을까.
대학 졸업 후 미술 전공이라 주로 페인팅 작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재료비가 덜 드는 디지털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서른을 넘기니 고정 수입을 받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깊어졌죠. 20대에는 바매니저, 홀매니저 등 서비스업에서 주 6일 10시간씩 일해서 6개월 동안 모은 돈으로 나머지 6개월 생활을 했어요. 20대 후반이 되니 감정 기복이 생기고 다운되어서 안정적인 일을 찾으러 나왔어요.
예술가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에서 공공사업 담당자로 첫 사무직에 취업했어요. 소상공인과 시각예술가를 이어주는 일이었고 아티스트 모집 기간이 지난 시기여서 매니저 일을 하게 되었어요. 같은 사업을 운영한 다른 회사에서는 예술가로 참여했고요. 두 기업 모두 사회적기업이라 사회적경제 일이 괜찮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프로젝트성 사업이라 길게 일하지 못하는 일이었어요. 모두 10개월씩 운영되어서 길게 일하지 못하는 일이었어요.
내가 일을 하면 어느 영역에서 할까를 포함한 돈 버는 일을 고민했어요. 문화예술 영역과 여성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 관련 단체들에 지원했죠. 그때가 코로나가 터진 해여서 애매하고 어려웠던 시기였네요. 여미래에서 같이 일하자고 한 것이 20년 6월이고 이제 꼭 4년이 됩니다.
자민이 기획, 현장 행사 운영, 사무직 등 다양한 영역의 일이 합쳐져 있는 여미래의 실무를 잘하는 것은 아티스트이면서 공공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끄덕이게 된다. 한 발 더 쑤욱. 혼자 살며 고양이를 키우 일하는 여성인 자민의 현재 삶, 요것조것을 물어보았다. 소상공인 아티스트였던 그녀가 맞이한 삼십 대 여성의 삶은 어떤 고민의 조각들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 어떤 선택지가 그녀 앞에 있을까.
이십 대에 내가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그리고 십 년이 지나니 지금은 또 뭘 하고 살아야 하나 더 딥한 질문을 하게 되어요. 이십 대에도 지금도 주변에 예술 작업만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어디서든 돈을 버는 사람은 소수라는 현실을 알게 되었고,지금은 노년기에 접어드는 고양이와 같이 살고 있어서 잘 돌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현재 나의 중심에는 고양이가 있어요. 고양이와 함께 살 집과 고정 수입이 그래서 계속 필요합니다. 음..결혼한 친구들은 중요한 결정을 같이 나눌 사람이 있어요. 대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책임은 오롯이 내가 다 져야 해요. 이런 차이를 상쇄할 수 있는 것이 경제적인 안정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여전히 돈을 더 벌어야 하나와 계속 할 일을 정하는 것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술로는 두 가지 답이 안 나와요. 그렇지만 내가 가장 나답고 안정감이 있는 순간을 떠올리면 혼자만의 방에서 그림을 그릴 때입니다.
여성이 일 준비를 할 때 필요한 것은 소통, 공감, 관계 지지인 것 같아요
여미래와 함께 일할 때 필요한 이미지가 뚝딱 나오는 것을 보고 누가 했냐고 다그쳐 물은 기억이 난다. 단순 이미지 포털에서 따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업한 사람이 궁금했고, 자민이 이런 작업을 했던 사람이구나 바로 알아봤다. 꾸준하게 자기 작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박탈감으로 떨어트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주는 부드럽고 조용한 안정감은 내부의 고요한 자민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이구나 싶다. 자민이 여미래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과거의 그녀, 앞으로의 자민처럼 선택지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갈림길 위의 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요즘이다.
여미래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을 대상으로 취업과 창업 과정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초면인 사람들이 왜 창업을 준비했는지 얘기를 하면 개인사를 서로 얘기하게 되는 순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어요. 사업이 종료되어도 소통을 위해 만든 카톡방에서 아무도 나가지 않아요. 그렇다고 별 말도 없어요. 카톡은 카톡방일 뿐인데 그 안에 감정이 있어요.
여미래에 들어오기 전에 짧은 창업 교육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남성 강사님들이 성공, 돈 버는 것 중심으로 매끈하게 강의했어요. 그에 비해 여미래는 여성들이 일을 하는 하는 이유와 세대별 이슈를 잘 섞고 필요한 지원과 공감, 소통, 관계를 만들려고 해요. 일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식의 성공하는 돈의 이야기와 개인의 이야기를 통한 공감과 연대의 차이를 더 많이 알게 되어요. 여성이 일을 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 돈을 잘 버는 방법을 아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의 차이인 것도 같아요.
올해 청년 활동가 대상으로 동료 찾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마포여성네트워크랑 같이 사전 질적 조사를 했고, 후속 작업으로 실제 동료 찾기 워크숍을 하고 있지요. 인상적인 질문과 답이 있는데 “동료와의 적절한 거리”를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일만 하는 사람”, “친구 같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이” 두 가지 답 사이의 지점을 선택하는 것이었는데요. 예상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친구 같은 사이에 가까운 지점을 선택한 답변들이 많았어요. 실제 워크숍에서 결과자료를 말씀드렸더니 다들 공감하였어요. 올해 인상적인 장면이었고 질문이었어요.
사무실 이전이 아니라 층층의 관계와 커뮤니티의 거리가 가까워졌어요
여미래는 작년 한여름 8월에 모놀로 이사했다. 풍경이 바뀌고 만나는 사람도 달라졌을 여미래의 생활. 여미래의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울 전역에서 오기에 영향이 덜하지만, 일하는 사람은 매일 마주치는 사람과 지역이 바뀌어서 뭐가 달라져도 달라졌을 것이다.
아직 10개월이 안되었네요. 진짜 더웠는데 어휴. 신수동에서도 ‘우리가만드는미래’랑 가정집 형태의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어요. 같은 공간이지만 분리가 어느 정도 되어 있었어요. 지금은 3층을 같이 통째 쓰니까 훨씬 가까운 느낌이 들어요. 여미래가 따로 회의실이 없어서 2층 ‘플랫폼:달’의 회의실을 자주 빌려서 써요. 여기는 사람들이 다 좋아해요. 여성들이 안 좋아하기 어려운 공간이죠(같이 웃음)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에 프로그램 운영이 더 잘 되는 효과도 있어요. 공간이 너무 사무적이면 긴장이 계속 이어지는데 ‘플랫폼:달’은 발을 들이는 순간 좀 온화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거든요. 여성환경연대의 활동은 뉴스에서 생리대 성분 발표와 기업의 소송사건을 봤지 실제로 만나기는 처음이었어요. 그때도 나와 관련 있는 일이어서 화가 많이 났지요. 평소에 그냥 흘려보낸 것에 문제를 제기하니까 그 뒤로 생리대를 살 때 다시 한번 그 생각을 하거든요. 중요한 것 같아요.
신수동에 있을 때는 마포지역 커뮤니티 활동이나 사업을 멀게 느꼈어요. 모놀로 오니 마포로컬리스트컨퍼런스도 모놀에서 벌어져서 각자 작은 이벤트도 했었고요. 모놀 근처에 사는 길고양이들도 함께 돌보고 있고요. 너무 귀여웠어요. 이게 공동체 느낌이구나 느꼈어요. 단순히 성산동으로 이사했다가 아니라 모놀이란 큰 공간에 와서 다른 층의 활동을 가까이 보니까 직접 관심이 생겨서 주변에 소개도 하고요.
고양이와 사는 자민의 미래의 선택지를 엿보다
얼마 전 모놀 사람들 손에 하얀 백설기 떡이 도착했다.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의 스무 살 생일 축하 떡을 따끈따끈하게 먹었고 그간의 애씀과 노력을 서로 축하하느라 모놀 입주 단체의 모임인 놀상회 카톡방이 한참 시끌시끌했다.
한 단체가 스무 살이 되었다, 일하는 사람이자 개인으로서 자민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일하는 사람 수가 적은 조직에서는 한 사람이 다양한 업무를 하게 됩니다. 조직의 일을 하는 사람과 일을 만드는 사람 사이에서 고민이 있지요. 일하는 사람이 적으니까 자연스럽게 일을 만드는 역할을 이미 하고 있어요. 결론을 내리는 시간을 미루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웃음) 여미래 20주년이라 행사 준비하느라 참여하는 회의가 늘고 있어요. 음, 지금이 나의 과도기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프로젝트 중심, 일 중심으로 실무만 하다가 지금은 구이사님이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은 어떨까 얘기를 나누면서 아는 것이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계속 이렇게 일을 배우면서 내가 만드는 일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과 누가 봐도 사무직을 어울린다 생각지 못한 사람이기에 이대로 가는 것이 맞냐는 생각 사이에 있어요. 당장 어떻게 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고민이 이어지는 요즘입니다.
사실 지금은 아주 만족스럽고 계속 일하는데 문제는 없어요. 앞으로의 나의 삶을 생각하면 생기는 갈림길 같은 거죠. 안정적인 거주지와 고양이의 노년을 잘 맞이하기 위한 수입이 필요해요. 여미래에서 내가 열심히 하면 수익이 발생할 수도 있고요. 쉬운 일이 아니지만요. 이런 생각이 계속 오고 갑니다.
모놀에서 맞이한 여미래의 20주년은 아마 자민의 다음 스텝과 연결이 될 것 같다. 여미래를 포함한 모놀에서 만난 사람들과 단체, 지역의 여러 활동 속에서 자민의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 작업이 발휘되고 그것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앞선 일 경험을 들으며 지금까지 여미래와 모놀에 온 자민의 선택지와 사유의 시간에 마음의 박수를 보냈다. 일하는 여성 자민이 만드는 미래에 어떤 길이 등장할까, 자신이 만든 여러 선택지가 있는 길 위에 서 있을 그녀의 선택을 모놀 모두와 함께 응원하고 싶다. 자민이 부담스럽지 않게 몰래~
마더피스 타로에는 갈림길의 노파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길 위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다. 검은 밤 산 위에서 바람을 타고 마음을 같이 읽은 여신이 속삭인다.
“당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요. 모든 길은 다 옳아요, 후회할 일은 없어요. 그러니 웃음을 잊지 말아요.”
_ 이 글은 해빗투게더협동조합에서 뉴스레터에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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