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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Jun 09. 2024

선명함이 빚은 포용
에코페미니스트 공유공간 플랫폼:달

삶의 망망대해를 건너는 여행자 달지기 한빛


이 글은 마포구 성산동의 해빗투게더의 시민자산화 건물 1호
'모두의놀이터'의 '모놀 Life' 시리즈 중 3편입니다.

거짓말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것'이다. 남을 속이는 나쁜 짓이라는 도덕의 잣대를 제거하고 '내 마음과 다른 말'(명상하는 분이 내게 한 말)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면 밥 먹듯 거짓말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겉과 속, 앞과 뒤가 같은 존재를 만나면 속이 시원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작년 5월 모두의놀이터 2층에 문을 연 '에코페미니스트 플랫폼:달'이 이름에서 한 점의 거짓 없이 숨김없는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도 속이지 않는 이 선명함에서 비롯한 사랑은 지금 더없이 큰 포용과 허깅으로 사람을 맞이한다. 포장할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으니 오면 오는대로 다 받겠다, 근데 오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모두의놀이터에 오면 1층에 SCC 카페가 있군, 아 2층에 에코페미니스 공간이라구, 한번 가보자하고 문을 열고 올라가면 조용한 미소로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 발을 디딘 공간이 어색하고 신기하고 궁금할 때 누가 웃어주면 경계가 풀린다. 들어오세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비건 음식과 차가 있는 바도 쓰윽 보고 나무빗깔의 테이블과 탁자, 여성의 몸과 마음, 생태와 관련한 책,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전시들, 메시지 가득한 작품들에 눈이 간다. 

어느새 자리에 앉아 얘기를 하거나 전시를 보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딱히 물어볼 것도 없이 선명하게 다 보여주는 거짓 없는 사랑의 공간 플랫폼:달.

이곳을 지키는 달지기 한빛을 만났다.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요


모두의 놀이터 2층 플랫폼:달(이하 풀네임,달 같이 사용)의 오픈 시간, 살짝 엿보면 한빛이 부지런히 공간을 오고가며 사람들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혼자 여는 시간이 가끔은 외로워 보기도 한다. 그녀는 어디의 여울목을 맞아 달까지 왔을까 평소 궁금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핑계로 다짜고짜 물었다.


전공이 좀 특이해서 말하면 다들 놀라요. 배를 모는 항해 전공을 했고 항해사 자격증이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실습으로 세계의 바다에서 배를 몰았어요. 브라질, 호주, 중국, 동남아 등 세계 곳곳 바다 위를 다녔지만 정작 나는 너무 갑갑했어요. 배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폐쇄적이고 사람이라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없는데다가 근본적인 질문인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돈은 일을 하면 통장에 쌓이겠지만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한 나에게 그 돈이 의미가 없더라고요. 항해사는 특이한 직업이라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 자부심이 있는데, 나는 그것마저도 없으니 아, 이건 아니구나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 마음을 먹었지요.

더 어렸을 때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집이 유복하지 않아서 유학도 가야하는 사진 전공은 할 수가 없었어요. 항해사가 된 것도 수업료가 없는 학교를 찾아서 간 것이고요. 그래도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조그마한 사진기를 항상 갖고 다니면서 찍어요.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의 말처럼 놀랄 만한 이력이라, 진짜 한빛이 플랫폼:달까지 배를 몰아서 왔을 줄이야. 그녀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하지만 한빛이 모는 배를 타는 상상을 순간 하였다. 동시에 항해사와 에코페미니즘 공간 사이에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아니, 어떻게 중간의 섬은 어디이고, 어떤 항로를 찾았길래 여기까지 온 것인가. 점점 더 귀가 솔깃, 몸이 앞으로 쏠렸다.


2016년 마르쉐에 갔다가 일회용 생리대의 위험한 성분을 알리는 여성환경연대의 캠페인을 만났어요. 크게 충격을 받았는데  '뭐지, 생리대가 왜 유해하지? 나는 맨날 쓰는 건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이거 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질문이 우수수 쏟아졌어요. 1회용 생리대 때문에 생기는 피부 트러블과 월경통에 관해 알게 되었죠. 너무 공감이 되고 대안으로 면월결대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여성환경연대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고 팬이 되었어요. 후원회원이자 팬으로 있다가 먼저 활동가가 된 채식 모임의 친구가 플랫폼:달 매니저를 구한다고 권해줘서 한참 고민을 했어요. 왜냐하면 항해사 일을 그만두고 요가를 배우면서 내가 할 일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여성환경연대의 팬심이 2년 기간제 일자리니까 한번 해보면 어떨까 마음을 먹게 했어요. 명동 청년 공간 운영, 보틀 팩토리 일을 하여서 공간 운영과 기획 일에 재미가 붙었고 여성환경연대의 에코페미니스트 공간이라는 것도 좋은 일이라 2년간 재미있게 일을 해보기로 생각하고 훅 지원했어요.


달달장에서 여행 사진을 판매하며 사람을 맞이하고 있는 달지기 한빛



잘 될거야, 그럼 잘 될거야를 주문삼아


사진과 항해사와 공간 운영과 에코페미스트가 드디어 섞이기 시작했다.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항해사가 기록하고 담아두는 사진 같은 순간들, 그리고 사람들이 마주치는 장소, 거기에 흐르는 은근하지만 물러섬 없는 철학과 삶의 방식, 문화. 한빛이 그려내는 플랫폼:달의 컬러이다. 달에 들어가면 호흡이 느려지면서 릴렉스가 되고 차와 음식의 은은한 향이 '잘 왔다, 수고한 그 몸을 여기 두어라' 손을 내민다. 이런 환대와 여유를 주려면 공간지기는 보이지 않는 자잘한 노동으로 허리가 휜다. 플랫폼:달은 5월 30일 돌잔치를 했다. 지난 1년간 한빛의 달지기의 삶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공간 셋팅이 막 끝난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원래 공간 기획을 담당한 분이 내가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있어 그만두셨어요. 

혼자 달에서 헤매는 시간이 길었어요. 오픈식은 멋지게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했는데 사람들은 플랫폼:달에 오지 않았어요.  여성환경연대의 회원일 때와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참 달랐어요. 게다가 이 공간은 여성환경연대가 있는 곳과 떨어져 있거든요. 혼자 자리를 지킬 때 가끔 우울하고 슬픈 맘도 생기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것을 해보라는 말보다 하나라도 같이 하는 사람이 정말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내가 혼자 할 수 있는게 이렇게 없나 느끼는 시간이었는데, 주변의 친구들을 불러서 워크숍도 하고 작고 큰 프로그램들을 만들었어요. 한 6개월 보내고 나니 서로 연결고리를 만들 필요가 있어서 여성환경연대의 회원 담당하는 활동가가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같이 궁리를 해요. 1년 사이에 플랫폼:달이 조금 더 알려져서 요조님이 운영하는 책방무사와 같이 행사와 프로그램을 하니까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확 늘었어요. 여성환경연대의 사업과 이어지는 기획과 프로그램을 준비하고요. 

그럼에도 종종 역부족이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하고 싶은 것들을 혼자 다 하기에는 불가능하니까요, 여전히요. 다행히 곧 한 명이 같이 일을 한다고 하니 운영 시간도 길고 뭔가 좀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작년부터 주문처럼 혼자 앉아서 생각한 말이 있어요. "잘 될 거야. 그럼, 잘 될 거야."  정말 잘 될 거예요.

에코페미니즘의 일상, 플랫폼:달의 풍경


공간이 이래서 존재하는 거야를 느끼는 순간 전율을 느껴요


이제 막 인테리어가 끝난 공간에 저 혼자 앉아서 어떻게 이 시간을 헤쳐 나갈까 생각하고 있는 한빛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공간은 하기 전 상상한 것과 막 문을 연 시기의 현실 사이 차이가 심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익숙한 곳에 몸을 두려고 한다. 안전하고 익숙한 곳이잘 꾸민 곳보다 더 편한 곳이기에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타인이 자기 공간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곳의 첫 매니저가 된 한빛은 찾아오는 사람에게 혼자 버티는 사람의 기척을 내색하지 않고 참 차분하게 1년을 보냈다 싶다. 사람들이 플랫폼:달과 낯가림 하는 동안 한빛도 낯가림을 하였으리라. 지난 시간 속으로 돌아가 2층 달의 한빛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뭐해요? 괜찮아요?" 


플랫폼:달을 공유공간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그게 무엇인지 이제 감이 좀 잡히는 것 같아요. 직접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공간을 더 많이 사람들이 활용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직접 다 기획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이런 감각을 알았어요. 달이 연결고리가 되어주면 된다는 것 말이죠.

모두의놀이터에 입주한 사람들이 종종 달을 사용합니다. 그들도 또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연결고리인 거잖아요. 1층의 SCC가 카페이고 우리도 그런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부분을 더 생각하게 되어요. 비슷한 것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요. 모놀의 대관 공간도 마찬가지로 찾아오는 사람이 다릅니다. 가끔은 서로 같이 할 꺼리들을 놀상회에서 모색하고요. 모두의 놀이터에 있는 분들이 열려 있는 분들이라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고 제안 받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아요. 

음.. 달은 아직 이곳에 오지 않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어야 해보고 싶은 것들이 더 다양하게 생길 것 같아요. 요즘 채식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거든요, 그래서 음식 따라 왔다가 에코페미니즘을 만날 수 있잖아요. 에코와 페미니즘을 같이 선택한 이유를 쉽게 전해주고 싶어요.

달지기로서 인상적인 장면을 마주할 때가 있죠.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공감하고 개인의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을 때, 나의 어려움과 지금 상태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슬픔, 기쁨, 기후 위기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의 나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요.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런데, 우리가 다 같이 느끼네 공감하면서 이야기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깊어져요. 이 공간이 이래서 존재하는 거야, 전율을 느껴요.


니 마음이 내 마음이야 라고 느끼고 순간

공간지기가 겪는 최고의 순간과 견디는 어려움을 모두 겪은 1년이 지났고, 한빛은 새로운 달식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더 많은 할 일이 눈앞에 있고, 이제 제법 친한 모두의놀이터 식구들과도 자주 웃는 얼굴로 수다도 떨고 서로의 행사 초대를 주고 받는다. 한발씩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걸음에 등대처럼 불을 밝혀주는 한빛이다.

앞으로 찾아올 누군가에게 한빛은 이렇게 말을 건넨다.


"가끔 남자인 내가 여기 와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플랫폼:달은 남자여도, 여자여도, 남녀가 아니여도, 그냥 페미니즘 잘 모르고 환경에 관심이 많이 없거나 실천을 고민하지 않았어도 그냥 오세요. 여기는 안전하게 열려 있어요. 편히 와서 맛있는 음식과 차를 먹고 요조님이 큐레이션 한 책도 보고요. 그러다가 궁금하면 물어봐주세요. 에코페미니즘에 여러분을 맞추지 말고 그냥 호기심과 낯설음을 갖고 오셔도 괜찮아요."

  

글 : 삐삐

사진 : 한빛, 삐삐

발행 : 해빗투게더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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