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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희 Dec 08. 2018

단추론  : 인력 배치의 어려움

각자의 자리

아침마다 아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출근을 한다. 아내가 옷을 골라서 데일리 행거에 걸어 놓고 출근하면 나는 뒤늦게 일어나 골라준 옷을 입고 출근하는 식이다.


오늘은 아내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집이  먼지라 출발하는 시각이 조금 늦으면 강남까지 만원 지하철을 타야 해 마음이 급하다. 출근길에는 단 몇분 차이로 순식간에 인파가 몰리는데 콩나물 시루보다 빡빡한 지하철을 타노라면 아침부터 녹초가 된다. 조금 차이로 지옥길이 열리는 거다. 그래서 아침시간은 항상 마음이 급하다.


아내는 늦은 경황 중에도 내가 입을 니트를 꺼내서 셔츠 위에 입으라는 말을 남기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행거를 보니 평소보다 두툼한 옷이 놓여져 있다. 가을비로 기온이 크게 떨어진다는 예보를 들었나보다. 급한 와중에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에 뭉클하다.


이 니트는 미국 출장길에 아울렛에 산 옷이다. 어두운 남색에 목둘레가 크고 단추가 세개 달려 있다. 한국에서는 수십만원에 팔렸을 법한 비싼 브랜드인데 미국인지 매대에서 단돈 몇만원에 팔길래 망설이지 않고 샀다.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비싼옷을 싸게 샀다는 뿌듯함에 마음에 들어하는 옷이다.


셔츠를 고르기 위해 옷장을 열었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텐데 다림질의 노고를 생각하면 다려진 녀석을 입을 수는 없다. 마침 얼마 전 겨울맞이를 하면서 꺼내놓은 갈색 셔츠가 보인다. 여름이 오면서 옷장 깊숙히 들어갔던 녀석인데 날이 다시 쌀쌀해지면서 얼마전에 다시 세상빛을 본터라 아직 구깃구깃하다.


갈색 셔츠 위에 아내가 골라준 니트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아이보리 바지와 갈색 셔츠의 깔맞이 영 어색하다. 니트 아래에 입을 옷이라고 너무 만만하게 골랐나. 색깔을 고민하는 정성이 부족했다. 잘 안보일 옷이라고 무시하면 안되는 거였다. 다시 옷장을 보니 5년전에 산 파란색 셔츠가 보인다. 산지 오래되어 색깔이 좀 바랬지만 안보일테니 괜찮다. 이 녀석으로 해야겠다. 옷을 갈아입고 보니 색조합이 아까보다 나아 만족스럽다.


그런데 목 깃이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한쪽 단추가 떨어져 있다. 귀찮지만  단추를 새로 달아줘야 겠다. 셔츠를 벗고 안쪽을 보았다. 조그마한 여분 단추가 붙어 있다. 다행이다.


사라진 단추가 남긴 자국을 찾아서 기존보다 조금 아래에 단추를 달았다. 기존 자리는 실밥이 조금 튿어져 있는다. 그리고 조금 낮게 달면 못깃이 빳빳해져 더 폼이 날거다. 대뇌 깊숙히 숨겨져 있는 바느질의 기억을 복기하였다. 나름 중학교때 바느질 실습과제에서 20점 만점을 받은 나다. 십수 년만의 서툰 바느질이지만 솜씨가 죽지는 않았다. 단 앞뒤로 실을 몇번이나 돌리고 매듭은 10 몇바퀴나 돌려서 튼튼하게 하였다. 깔끔하게 잘 마무리 된 듯하다.


셔츠을 입고 거울 앞에 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새로단 단추 쪽 목 깃이 서지않고 너무 아래로 당겨져 있다. 게다가 어깨는 구김이 생겨 울퉁불퉁하다. 그래서인지 양쪽 어깨 좌우대칭도 안맞는다. 아무래도 단추 위치가 잘못된 듯하다. 단추를 너무 낮게 달아서 생긴 일이 분명했다.


아차 싶었다. 자기 자리가 있는 단추를 조그마한 욕심에 잘못 옮겼다가 옷태가 전부 망가졌다. 옷에 있는 십수개의 단추 중 하나임에도 가벼히 볼게 아니였다. 얼른 단추를 떼어 기존 자리에 다시 달았다. 그제서야 비로소 셔츠가 제 모습을 찾았다.


연말이 다가왔다. 회사에서는 인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승진하여 웃는 사람, 회사를 나간 사람, 다행히 유임된 사람, 승진에 밀린 사람, 평가가 좋은 사람 나쁜사람....각자 제 자리를 찾아갔다. 과연 이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은 걸까?


단추를 생각해 본다. 단추 하나에도 제 자리가 있듯이 회사의 직장인은 각자에 맞는 자리에 위치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인 기업에서 잘못된 인사는 회사를 망친다. 마치 잘못 자리 잡은 단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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