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대하는 방법
초등학교 짝궁은 1주일 단위로 두 명이 교대로 바뀌었다. 한 짝궁은 우리 반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고, 다른 짝꿍은 두 번째로 공부를 잘했다. 나는 공부를 못한 건 아니었지만 육상부였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그룹에는 속하지 않았다. 하루는 담임이 각자 좌우명을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내었다. 다음 날 아이들은 좌우명을 차례대로 발표했다. 그때 내 좌우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은 아닌 듯 하다. 마음이 담긴 좌우명이 아니라 숙제 안해 온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급하게 그럴듯한 걸 지어내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의 좌우명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이유인지 두 짝꿍의 좌우명은 방금 들은 것처럼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가장 공부를 잘했던 친구의 좌우명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자'였고, 두번째로 공부를 잘했던 친구의 좌우명은 '되는대로 잘 살자'였다. 개인보다 사회가 중요했던 시대, 진지함의 시대였던 1980년대에 '되는대로 잘 살자'라는 좌우명은 파격으로 느껴졌다. 되는대로 잘 살고 싶다고 한 친구는 그 뒤로 어떤 삶의 길을 걸어갔을지, 좌우명은 변하지 않았는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문득문득 궁금하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자고 한 짝궁의 안부는 썩 궁금하지 않다. 왜냐하면 머리를 쥐어 짜며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글을 쓰고, 사력을 다해 자신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그 동안 너무나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자라서 필요를 판단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만나볼 가치가 있는 사람들을 추려내고, 그들과 인터뷰를 하며 필요한 사람을 최종적으로 선발하고, 그렇게 선발한 사람들을 필요한 적재적소에 배치 한 후, 그들이 정말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 모니터링을 하는 일을 했다. 추려내기 위해 4,5만명을 만났고, 7,000여명을 인터뷰했고,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람 2,500명을 선발해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대기업에서 인력운영계획을 세워 채용공고를 내고, 서류전형을 하고, 면접을 보고, 부서배치를 하고, 수습평가와 인사관리가 나의 일이었다. 자신이 우리 회사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뽑아 정말 필요한 사람인지 확인하며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뽑아야 할지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고민했다. 퇴직 후에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학생들을 만나며 상대로부터 필요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얻어내는 방법을 13년 동안 이야기해왔다. 20년 가까이 필요한 쪽과 필요할 거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도대체 필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다보니 자신이 어딘가에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다소 냉소, 비판, 참견하는 태도가 생겼다. 그건 나의 삐딱한 태도 때문인지 초등학교 시절 숙제로 말한 나의 좌우명처럼 대충 지어낸 지원자들과 학생들의 글과 말 때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어쩌다보니 우리는 누구도 함부로 믿어서는 안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SNS, 인터넷, 카톡을 떠도는 정보든, 동업과 투자를 위해 내일 만나기로 한 사람이든, 폰이 부서져 친구 폰으로 문자 보낸다는 자녀의 문자든, 입꼬리를 올리며 성실하다고 주장하는 지원자든, 나를 좋아한다며 귀찮게하는 직장동료든, 모두들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온갖 패턴의 식물로 뒤덮인 정글 속에서도 자신에게 위험한 정보인 뱀을 직관적으로 찾아내는 원시인의 시신경 감각처럼 온갖 가짜와 진짜들이 뒤섞인 정보의 밀림 속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필요가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의심으로 무너지도 하고, 의심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의심으로만 끝나는 의심은 필요와 불필요를 뒤섞이게 만들어 삶을 방해하고, 질문과 대답을 찾아가는 의심은 필요와 불필요를 구분지어 삶의 방해물을 치워준다. 배움을 추구하는 의심은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만들어준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지는 의심의 첫 대상은 <필요>라는 개념이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자'는 좌우명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무언가에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은 우리 삶에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