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존재라 그럴까? 아이들은 공룡을 좋아한다. 독특하다는 것은 희소성 또는 부재를 뜻한다.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워낙 오래전 일이라 모를 일이긴 하지만, 공룡은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고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인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지능이 뛰어난 탓인지 무식한 탓인지, 자신 존재의 기반인 지구 환경을 극적으로 바꾸고 있다. 공룡 멸종에는 화산 폭발, 운석 충돌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인간 멸종에는 어리석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했다는 한 가지 학설만 남을 것 같다. 공룡 멸종은 공룡의 책임이 없지만, 인간 멸종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우린 똑똑하기 때문이다.
공룡은 억울하다. 가끔 공룡을 비효율적 조직에 빗대어 말하기 때문이다.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이미지처럼 머리는 작고 몸은 거대한 공룡 형태의 조직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을 접한다. 두뇌와 신체의 구조와 작동 방식으로 조직을 설명하는 것은 좋지만, 그래서 공룡이 멸종했다는 식의 결론은 곤란하다. 지층의 희미한 흔적만 실체일 뿐 공룡은 상상 속의 존재다. 가설에 의하면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우주에서 운석이 날아와 충돌하고 거대 화산이 폭발하고 온 세상이 불타버리는 장면을 본 목격자일 뿐인데, "네 머리가 작아서, 너 덩치가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잖아?"라는 말을 들으면 공룡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공룡 멸종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면 공룡은 얼마나 억울할까?
오너가 모든 것을 일일이 관여해야 겨우 돌아가는 조직이 있다. 오너의 입만 바라보며 일하는 노예 같은 구성원이 주축을 이루는 조직이 있다. 거대한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이동하는 거대 초식 공룡처럼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밀려오는데 모든 구성원들은 오너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오너가 사소한 부분까지 의사 결정을 해주어야 비로소 일이 진행되는 조직이다.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는 사회에서 오너 입, 의사 결정권자의 입만 바라보는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의 미래는 뻔하다. 오너가 신이라면 번창할 것이고, 인간이라면 망할 것이다. 아쉽게도 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적은 있다 하지만, 신이 된 인간은 없다.
인류학자 스티브쿤과 메리 스티너는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호모사피엔스가 번성한 이유를 분업에서 찾는다. 네안데르탈인은 남성, 여성, 아이 할 것 없이 대부분 큰 사냥감을 잡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고, 호모사피엔스는 일을 나누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한다. 다시 말하면 효율적 일을 위한 조직의 체계를 갖추었다는 말이다. 조직의 체계란 의사 결정에 대한 문제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의사 결정의 문제는 의사 결정의 내용 보다는 의사 결정의 과정이 중요하다. 조직의 체계를 갖춘다는 말은 합리적, 효율적, 창의적 의사 결정의 과정을 위한 체계를 갖춘다는 뜻이다. 각 직무의 중요도, 긴급도 등에 따라 의사 결정의 범위와 내용을 구성원들에게 적절히 이양해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나름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일의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일을 체계를 잘 갖추면 일은 자기 주도, 협업, 창의적 아이디어, 시너지를 얻어 쥐라기 시대의 공룡처럼 번성하게 된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신나게 일하는 즐거운 조직이 된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장차 무슨 일을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기 주도와 협업 능력이 만들어내는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아마도 일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다들 동의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일하며 그런 조직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다. 자기 자식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월급 아까운 구성원들을 믿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건 진화의 결정체인 뇌세포가 거부하기 때문이다. 믿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태도는 타인을 향해 필요할 뿐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태도다. 타인과 자신을 향한 신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후쿠야마 프랜시스는 일찍이 자신이 책 <Trust>에서 미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신뢰라고 말했다. 신용으로 해석하든 믿음으로 해석하든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과 타인을 신뢰하는 태도는 삶의 근본이다. 인간 사회에서 크고 작은 신뢰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인간의 멸종을 뜻한다.
공룡 멸종이 공룡의 책임이 아니듯, 취업이 힘들고 삶이 힘든 것은 학생과 청년들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책임져 줄 수 없으니, 스스로를 믿었으면 좋겠다. 오너가 용기와 결단으로 구성원들을 믿듯, 부모가 말썽꾸러기 자녀를 믿듯, 내 모습과 상황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맞는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며 스스로를 믿는 건 변화의 출발점이다. 타인의 인정과 신뢰를 받지 못하더라도 일단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권한과 책임을 갖고 신나게 일하는 사람들처럼, 스스로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공부하고 삶을 살면 좋겠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책임만 부여해서도, 권한만 부여해서도 안된다. 책임과 권한을 함께 부여해야 비로소 신뢰가 생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육과 일, 삶을 통해 자신의 삶에 권한과 책임을 스스로 부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하면 좋겠다.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스펙을 쌓으며 타인의 입만 바라보는 태도나, 정부의 근사하게 보이는 정책이 아니라, 아무리 초라해도 자신을 믿고 당당하게 말하고 겸손하게 배우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태도 아닐까? 믿음은 책임, 권한, 기회, 변화를 이끄는 첫 단추다.
어른이든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가난하든 부자든, 마음이 힘들든 행복하든 상관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의 권한과 책임을 스스로 부여하며 살아가는 힘을 길러가며 자신과 타인을 신뢰의 눈빛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불과 100년 사이에 지구 환경을 이렇게 엉망으로 바꾼 인간이니, 아무리 못났다 여기는 인간도 그 정도 능력은 있지 않을까? 혹시 알까? 앞으로 10년 안에 또 세상이 극적으로 변할지.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 정도는 바뀌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 적어도 그 정도 책임은 져야 하지 않을까? 덩치에 비해 콩알 만한 파충류 뇌를 가진 공룡도 그 정도 책임을 지며 삶을 살아갔을 것 같다. 자신이 흐려진다는 걸 알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