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인간에게 기쁨이자 슬픔이다. 어떤 이는 일이 없어서 슬프고, 어떤 이는 일을 하기 때문에 슬프다. 일을 얻게 되어 기뻐 날뛰고, 일을 그만 두어 축배를 든다. 한 사람의 삶은 그가 하는 일로 정의된다.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진로란 직업의 문제다. 한 사람의 진로를 말할 때, 발리 꾸따 해변 썬베드에 누워 매일 빈땅 맥주를 마시는 일상이나, 대학원을 다니며 지도 교수 연구실에서 논문 자료를 만드는 일상을 떠올리지 않는다. 직업이란 안정된 삶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인간의 활동이다. 진로란 일의 문제다. 일하는 상태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한다. 취업 준비를 하고, 전직과 창업, 새로운 투자를 생각한다. 이 모든 생각과 활동은 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SNS의 좋아요 싫어요처럼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각자의 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70억 인구 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두 가지로 귀결된다. 돈과 의미다. 사람들은 돈과 의미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일을 계속할 것인지 그만 둘 것인지 줄다리기를 한다. 돈도 많이 벌고 의미도 있는 일은 사실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은 안되지만 의미는 있고, 의미는 없지만 돈은 되는 일 사이에서 직업을 고민한다.
지난 수요일에 한 고등학교에 교육이 있었다. 강사 대기실 입구 한 켠에 두 명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 학교의 졸업생이라 했다.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한시적으로 일한다 했다. 무슨 일 하느냐 물어보니, 그냥 앉아 있는 일이란다. 그때그때 시키는 일을 한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도 멍하게 앉아 있는 두 명 청년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최저임금이지만 그들은 하는 일에 비해 만족할만한 돈을 받는다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게 매일 출근하는 이유일테다. 어쩌면 돈을 떠나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라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어디서 얼마를 받으며 무슨 일을 하든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 있을 테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라는 생각.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라는 생각. 그 생각은 곧 내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그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아 나가야 한다.일을 떠나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운동하지 않고 근육을 키우겠다는 것과 같다. 신입사원 연봉 8,000만원을 받든, 최저임금을 받든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현상이 걱정된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으로 무의미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경쟁적 상황. 일자리라는 통계 숫자보다, 일하는 사람 개개인이 자신의 일과 상호작용하면서 느끼게 될 자존감, 자기효능감과 연관된 일의 <의미>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무의한 시간을 보낸 댓가는 당사자에게 나름의 의미 있는 돈이 될 테지만, 자칫하면 일에 대한 잘못된 경험을 심어주는 건 아닐까? 그렇게 심어진 일의 경험과 경험을 대하는 태도는 세상과 자신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찾아보니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불쉿잡(Bullshit Jobs)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는 한 자신들의 직업이 존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느끼는지 아닌지에 대한 조사는 한 건도 없었다.'
'우리는 어째서 노동력의 그렇게 많은 부분을 스스로 무의미하다 여기는 일을 하느라 애쓰게 되었는지뿐만 아니라, 어째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 불가피하고 정상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되물어야 한다. 아니, 더 괴상한 점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런 의견이 구체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의미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쓸모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하고, 심지어 더 많은 명예와 인정을 받는 것을 완전히 합당하다고 믿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아무 일을 하지 않거나 어떤 식으로든 타인을 이롭게 하지 않으면서 봉급만 받는 처지에 놓일 때는 왜 우울하고 비참하다고 느낄까?'
각자의 직업,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는 구체적인 노력들이 필요한 시대다. 그런 추구와 노력은 직업을 통해 삶을 개선시키는 힘이다. 그런 힘들이 모이면 사회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리라 믿는다. 일에 대한 태도와 이해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초 체력을 길러주는 일이 진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교육 본연의 역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