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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라


우린 순서에 익숙하다. 순서는 자연스럽게 순위가 되고, 순위는 우열이 되기도 한다. 새치기를 당하면 화가 나는 이유, 자상한 얼굴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이도 자신 앞으로 확 끼어드는 차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도 순서에 내포된 사회적 트라우마가 일상화된 한국 문화 때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번호는 순서다. 학창 시절, 번호가 없었던 적은 없다. 어떤 선생님은 가나다 순으로 번호를 정했고, 어떤 선생님은 키순으로 정했고, 어떤 선생님은 생일 순으로 정했다. 어떤 선생님은 성적 순으로 번호를 정하기도 했다. 어떤 순서는 상관없었지만, 어떤 순서는 두고두고 일상을 관통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 번호를 정하는 걸 당연하다 여겼다. 학교, 교사, 학생들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번호가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다. 대상을 효율적으로 식별하고 관리하는 방법인데, 이름보다는 번호가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기던 그 번호라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요즘 생겼다.


학교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대학의 "선발" 때문이다. 선발도 순서다.


정성적 평가를 하든 정량적 평가를 하든 둘을 섞든 줄을 세워야 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발은 수단일 뿐이다. 어떤 선발 과정도 완벽할 수 없고, 어떤 경우도 선발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선발 과정'이 많은 것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의 선발(입시제도)은 교육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 아래 동영상에 공감하겠지만, 교육이 변하지 않는 이유, 변할 수 없는 이유는 입시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선발 방식 때문이다.


어찌어찌해서 입시가 바뀌고, 대학이 바뀌어도 문제는 남는다.


연사가 강조하는 교육이 실현되어도 기업과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자소서 작성기법, 면접기법을 공부하며 가식적 자기소개를 위해 스스로 로봇이 되는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긴 줄의 앞쪽에 서기 위해 스펙을 쌓는데, 정작 스펙은 업무 역량과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허무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공교육은 대학이 문제라 하고, 대학은 기업이 문제라 한다. 기업은 지원자들이 문제라 하고, 지원자들은 세상이 문제라 한다. 경영자는 구성원이 문제고, 구성원은 관리자와 경영자가 문제라 한다. 모두 서로 상대방의 문제라고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들의 문제라 여기고 함께 풀어나가려는 주도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교육의 본질을 놓치고,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대동단결한 학부모, 학교, 사교육 업계는 그렇다 쳐도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변하는 환경에 구태의연하게 대처하다 망할 기업은 그렇다 쳐도, 기업에게 정작 필요한 인재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냅다 남들처럼 스펙만 쌓다가 좌절과 절망, 분노와 슬픔으로 창창한 삶을 보낼 대다수의 학생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이 이러니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동 학대다. 객관적인지도, 공정한지도, 목적에 부합되는지도 모를 애매모호한 단 한 번의 선발로 정년까지의 삶을 철밥통처럼 보장 받는 제도가 과연 공정한 것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제도 아래서 선발 당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다 고시원에서 사라지는 청년들의 삶을 무감각해지는 것이 두렵다.


할 수만 있다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교육의 과정에 있든, 채용의 과정의 있든, 일의 과정에 있든 바람직한 방법을 일단 시도해보면 좋겠다. 일단 좋은 대학을 보내자는 생각보다 일단 좋은 교육부터 해보자라고 마음 먹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학이든 기업이든,

누군가가 누군가를 선발할 때,

선발의 목적이 무엇이지, 선발을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할 것인지,

그 가치 실현을 위해 어떤 선발 과정을 만들어야 할 것인지 솔직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새롭고 창조적인 선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모델을.

어렵다고 대충 덮고 갈 일이 아니다.

대충 넘어가니까, 우리 교육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피해자는 우리 모두다.

미래 세대까지.


줄세우기 말고, 다른 선발 방식은 없을까? 줄세울 필요없이 평가자들의 주관적 판단을 초월하는 정성적 모델은 없을까? 스펙과 줄세우기 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선발 방식을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정성적 평가만으로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창의적 방법은 없을까?


필드의 여러가지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해내는 다양한 방법을 현실적 실효성과 사회적 가치 측면에서 평가하는 모델은 어떨까?


완벽하지 않지만, 새로운 방법들을 여기저기서 시도하다보면


사회 전체에 적용할만한 좋은 모델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5Ai29-H_v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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