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나푸르나

by 피라

오래도록 비를 느끼고 싶었다.

비내리는 때에 혼자 떠나기로 했다.


히말라야의 우기, 올라가는 길.

안나푸르나를 향해 홀로 비 맞으며 걷기 6일째.


동행이 된 영국인 부부가 물었어.

왜 포터도 가이드도 없이 혼자 산을 오르니?

우린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가이드와 함께 가고 있는데.


여행자는 대답했어.

나 역시 그래.

하지만,

혼자 안나푸르나를 오르며 나를 믿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히말라야의 우기, 내려가는 길.

마지막 동행이 된 호주 친구가 말했어.

작년에 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했어.

ABC에 다녀와도 이렇게 살아 있어,

내려가서도 당분간 살아 있을 것 같아.



어떤 여행자들은

뭔가를 버리기 위해,

어떤 여행자들은

뭔가를 찾기 위해 안나푸르나를 찾는다.


안나푸르나에는,

여행자들이 버린 쓰레기가 점점 쌓여가고,

산마을 곳곳엔 여행자들이 뿌린 씨앗이 피어오르지.


쓰레기를 몰랐던 산마을 아이들은 여행자들에게 말하지.

엄마가 암에 걸려 방에 누워있어.

1달러만 줘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땅이라는 뜻이야.

여행자가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컵 하나도

휘슬러 냄비처럼 쓰이는 척박한 곳



옛날에 안나푸르나는 정말 풍요로운 곳이었는지도 몰라.

모든 것이 귀해서 서로 돕고 살아갔을 테니까


서로 돕고 살면 풍요로운 곳,

서로를 수단으로 여기며 살면 척박한 곳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탐욕과 권력욕에 찌든 사람들이 산다면 재앙의 땅일 뿐.

여행자는 오늘도 비내리는 안나푸르나를 오르내린다.

비가 땅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라며


아스팔트 하수구가 아닌, 땅 속으로 스며들어 새싹과 꽃을

세상에 피워내기를 바라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