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피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상황을 생생하게 알아야 비로소 뭔가 조금 알 것 같다. 이 역시 착각일 수 있다. 내 관점에서 대상을 이해하는 것은 앎이 아니다. 그건 앎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 가깝다. 착각이란 대상에 대해 안다고 여기는 믿음이다. 사람들은 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앎을 혼동한다.


배우는 사람은 <안다>가 아니라, <알고 싶다>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알고 싶은 마음은 삶의 에너지다. 존재란 에너지의 흐름이고, 에너지는 채워진 곳에서 비워진 곳으로 흐른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에는 더 이상 새로운 에너지가 흘러 들어갈 여지가 없다. 삶이 무료하고 힘들어지는 이유다. 앎에 대한 바람은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상태로 만든다. 겸손이라 부르든, 감사의 마음으로 부르든, 배움을 향한 열정, 문제해결을 위한 지치지 않는 태도로 부르든 모두 똑같다. 에너지는 배우는 사람을 향해 흐르니, 스스로 모른다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존재감을 느끼는 생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오만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른다고 여기며 배우고 성장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것에 목적이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앎이라는 무지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좋다. 그것에 대해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는 나로부터 벗어나자. 죽음을 피해 탈출하는 디아스포라처럼.


아무리 재미있는 콘텐츠도 교과서에 들어가면 쳐다보기도 싫어지고, 아무리 놀랍고 신기한 사실도 수업 시간에 접하면 이집트 미라처럼 푸석푸석 생기를 잃어버리는 기적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교실이라는 공간을 창조한 건 <앎>일지 모른다. 학생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태도, 교사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단정적인 태도가 서로 맞부딪혀 서로의 소중한 시간을 미이라로 만드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다는 생각,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 삶은 생기를 되찾을 것 같다. 싫든 좋든 급식의 배식자처럼 교사가 부어주는 지식을 머리 속에 집어 넣어서 일정 기간 동안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교실이 해방될 때, 학생들의 진짜 삶이 시작될 거라 본다. 나는 그 순간이 진짜 진로 교육이 시작되는 때라고 믿는다.


학생들은 언젠가는 일을 하게 될 거다. 창업이든 취업이든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하게 될 테다. 일을 하게 되면 비로소 알게 된다. 일은 문제해결의 과정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미 내가 아는 것,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들로부터 빠르게 탈출해야 한다는 것을. 앎의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정치도 교육도 행정도 아는 것을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무지를 인정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배워가는 과정이었음 좋겠다. 자신의 앎을 회의적,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생산적 겸손함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나오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회는 분명 지금보다 좋아질 것 같다. 무엇보다 교실이 재미있는 공간이 될 것 같다. 학생들의 미래가 저절로 밝아질 것 같다.


교실은 모르는 것을 발견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사든 학생이든,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서로 나누며 즐거움을 느끼는 곳을 학교라 부르면 좋겠다.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앎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몸소 체득하는 시간을 교육이라 부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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