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이야기를 해 달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원할 때도 있다.
그때 그때 다르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이미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진로 고민은 두 가지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는 알고 있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모르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첫 번째 이야기에 몰리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 과정을 알고 싶어 한다.
특정 직업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고,
그걸 자신의 미래 직업으로 정하고,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진로에 관한 우리 생각과 행동의 모든 것이다.
정보를 모으고, 정보의 가치와 자신을 연결짓고,
돈이든 가치든 나와 연결되는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일을 가지기 위해 뭔가를 한다.
청년들, 재직자들, 시니어들, 은퇴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시작과 끝,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고민한다.
시작과 끝, 과정에 대한 이야기(직업 정보, 진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두렵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길지, 삶이 어디로 갈 지 모르는 두려움.
불확실성을 우리는 두려워한다.
그래서 시대의 화두가 안정성이다.
공무원, 공기업 같은 안정적 직업이 1순위로 꼽히는 이유다.
이미 말고 있는 이야기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 진로 선택이다.
영화 촬영을 하듯 내 삶에 대한 이야기의 시놉시스를 미리 만들어야
삶이 펼쳐진다 여긴다.
시나리오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두렵다. 무엇도 시작하지 못한다.
덤성덤성한 각본이든, 촘촘한 각본이든, 각본대로 되지 않으면 좌절한다.
진로(뭔가를 하는 삶이라고 해 두자)를 정하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뭔가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을 가져 일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삶을 계획하고 그런 삶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계획대로, 생각대로, 기대했던 바와 다르다는 것을.
이건 지구상의 모든 물건을 손으로 잡고 하늘로
던지면 모두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는 진리와도 같다.
기대와 실제가 다른 그 간극.
그 간극 때문에 넘어지고, 절망하고, 집을 나오지 않는다.
이건 5년 동안 강한 어깨를 만들기 위해 모든 걸 바쳤는데,
그래서 내가 던진 돌덩이가 달에 가 닿기를 바랬는데,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하는 태도와 같다.
문제는 간극이다.
어떤 이는 삶의 간극을 재미로 여긴다.
어떤 이는 삶의 간극을 절망으로 여긴다.
정해진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
정해진 대로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
정해진 이야기를 만들지 못해 머리가 아픈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실행을 하더라도 삶이 힘들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삶을 기쁨과 슬픔, 좌절과 절망, 성취와 실패, 행복과 불행으로
가르는 지점은 바로 간극을 대하는 태도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인공 지능 시대에 문제 해결 위주의 인간의 일)
간극을 잘 다룰 줄 안다.
일이란 문제해결의 과정이고,
문제 해결이란 간극을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하고, 줄여 나가는 과정이다.
정해진 이야기, 알고 있는 이야기, 예상되는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은
자신의 진로를 찾기 힘들다. 아무리 치열하게 찾아도 선택지는 별로 없다.
세상 모든 이야기의 플롯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만들기 전에는 뻔하지만,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셀 수 없는 경우의
수들이 나와 독특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야기는 만들어보기 전에는 어떤 이야기가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이야기가 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이야기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만 생각하면, 이야기를 한 줄도 진행하기 힘들 수 있다.
삶은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이다.
한 발 한 발 내디딜때마다 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미래의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
인간의 진로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진로로드맵 같은 뻔한 정보를 짜깁기한 정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직업에 대한 이해를 하고 간접 경험을 하고, 상세한 정보를 얻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다만, 정보와 형식이 인간의 삶을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재화와 서비스도 그렇듯,
인간의 삶도 내용과 형식이 함께 갖춰져야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그 무언가가 진로다.
정보와 형식만 난무하고 내용이 실종된 시대 같다.
내용의 부재로 인해 학생들이 힘들어 한다.
학생뿐 아니다. 모두가 그렇다.
내용의 부재란 이야기의 부재다.
나의 이야기.
단순히 직업을 선택하고 그 일을 하는 진로의 문제가 아니다.
그 어떤 인간도 일과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어떤 일을 하는가는 어떤 삶을 살까의 문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에 대한 지치지 않는 대답의 과정이
한 사람의 진로를 만든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정해진 이야기와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
아이가 또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다.
나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
아이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
언제 무엇을 원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삶이 그렇듯, 아이의 요구도 그때 그때 다르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이야기든 이야기를 해주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지 나도 모른다.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이의 표정과 반응을
보면서 그때 그때 이야기를 만든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이가 자꾸 나보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 이유인 듯 하다.
친한 친구는 통화할 때,
습관처럼
"뭐 재미있는 일 없나?"
라고 묻는다.
정해진 이야기 속으로 자신을 구겨 넣은지 오래된
삶을 살아서 재미가 없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 나도 모르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다.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어 나가면 된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지 너무 고민 말았으면 좋겠다.
각자 자신의 진로 때문에 너무 많은 고민을 말았으면 좋겠다.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 말았음 좋겠다.
그냥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삶이라는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