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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by 피라


<고립의 시대>라는 책의 주제는 외로움이다. 미국 사람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 그의 인기가 아직 건재한 이유, 많은 나라에서 타인(이민족, 소외계층,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배제하는 정치가 지지 받는 이유를 외로움이라는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말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해 온 50년 세월 동안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저자가 정의하는 외로움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봐주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욕구, 힘을 갖고 싶은 욕구, 공정하고 다정하게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다. 외로움에 대한 전통적인 척도는 이 가운데 일부만 포함할 뿐이다.


외로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염두에 두고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최근에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동료 시민이든 당신 주변 사람과 단절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최근에 당신이 투표한 정치인이 당신에게 관심이 없고 당신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느낀 때는 언제인가? 최근에 권력을 가진 자들이 당신의 고군분투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최근에 일터에서 당신이 힘없는 또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외로움에 원인을 제공하는 한 축은 경쟁이다. 대학생 시절에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했고,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유행했다. 학교를 오고가는 지하철 광고판에 적혀 있던 <당신의 경쟁 상대는 세계의 누구입니까?> 문구를 읽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세계 모든 사람들과 경쟁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이니 그들과 경쟁해서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김영삼 정부의 모토였다. 그래야 국가의 미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시절 쯤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런 문구가 가슴에 박혔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일을 잘하면서 가장 싼 임금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라는 글귀였다. 그때쯤이었나보다 세계화를, 신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게 된 때가. 그리고 얼마 뒤, IMF가 터졌다.


수십 년 세월이 흘렀고, 그들이 외쳤던 경쟁은 여전하다. 마스크를 쓰는 삶처럼 경쟁은 숨 쉬는 일 같다. 학생들의 경쟁은 더 심해졌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학교에서도 경쟁을 외치고,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경쟁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경쟁은 밥이다. 밥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 경쟁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세상이 이러니 아이들에게 경쟁에서 살아남고,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스파르타식 교육이 아직도 먹혀드는 이유다. 하지만 대학생 때 가졌던 의문이 여전하다.


세상이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이 과연 당연한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당연한 일인지도 더욱 잘 모르겠다. <고립의 시대>라는 책을 읽으니 하나 확실한 걸 알게 되었다. 외로움. 참 외로운 시대다. 외로움과 경쟁은 무관하지 않다. 외로움은 삶의 기본값이긴 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더욱 외로워지기 위해 노력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것도 삶을 갈아 넣으며.


노키즈 존이 일상이 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대적으로 보이고, 나와 다르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거슬린다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면, 내가 한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진로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가 외로운 시대에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지 모른다. 타인을 비난하고 고립시키는 일이 경쟁에서 이기는 가장 쉬운 길이라는 생각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 SNS, 일상, 직장, 사회에서 우리와 다른 것을 배타적, 적대적 태도로 대하면서, 한 편으로는 틈만 나면 낯설고 이국적인 곳에서의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인간의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90년대(IMF 이전)와 지금이 같은 점은 여전히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그때는 취업하기가 무척 쉬웠다는 점이다. 그때는 여러 곳에 합격한 후 어떤 기업에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 취업의 가장 어려운 일인 시대였다. 아무리 경쟁해도 취업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시대에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까? 결과는 모르겠고, 일단 더욱 경쟁을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까? 바로 그 선택에 따라 우리 삶은 더욱 외로워질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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