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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by 피라




부산역에 1층과 3층에 식당가가 있다.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1층의 한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로봇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신기해서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로봇의 몸체 공간에 음식을 올린 후 주문한 테이블의 번호를 입력하면 음식이 실린 로봇이 해당 테이블로 가는 시스템이었다. 손님은 테이블 앞에 도착한 로봇에게서 주문한 음식을 테이블로 옮긴다. 이 식당에 도입되지 않았지만 요리도 로봇이 한다 들었다. 요리 로봇이 음식을 만들고, 서빙 로봇에 음식을 옮기고 테이블 번호를 입력하면 <주문 접수-요리-서빙>의 과정은 모두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 음식을 다 먹으면 로봇 호출 버튼을 눌러 식기가 담긴 식기를 로봇에게 올리면 주방으로 이동해 식기 세척기로 그릇을 옮기는 기능을 추가하면 좋겠다. 여기에 손님이 들어오면 인사하는 기능과 세척기 안 그릇을 집어 내는 기능만 추가하면 식당 일에 더 이상 사람은 필요 없을 것 같다.




AI와 로봇으로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한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마음이 복잡하다. 편리함과 경제성이라는 도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기둥을 내리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기둥의 이름은 인간의 일과 삶이다. 기둥을 부수는 건 집을 허물어 폐허로 만드는 일일 수도 있고, 더 살기 좋은 집으로 만드는 리모델링일 수도 있다. 리모델링이 되려면 사라지는 일 대신 새로운 인간의 일이 만들어져야 한다. 일이 없는 인간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일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파이어족도 남은 인생을 아무 일이 산다면 무기력과 무의미한 삶으로 괴로워할 가능성이 크다. 일은 그만둔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 인생이다. 일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아는 인생도 함께 사라질 것 같다.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는 이유는 저마다의 일을 갖기 위해서다. 졸업 후 싫든 좋든 취업을 통해 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저마다 분투한다. 직업이란 이름으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때는 20살에서 30살 사이다. 첫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인생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이 되는 시기 동안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의 이유와 가치가 무엇인지 배울 기회가 없다. 아무도 관심 없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신입 사원이 되면 애써 순수하고 맑은 눈빛을 날리며 "시켜만 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할게요"라고만 말한다. 대기업이든 1인 기업이든 사회 초년생이 일을 제대로 배울 기회는 극히 드물다. 엉터리 일, 해서는 안 될 일, 잘못된 프로세스, 일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배울 확률이 훨씬 높다. 일의 시작과 중간, 끝을 제대로 알고, 일의 의미와 가치,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훌륭한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설사 만나더라도 그 사람이 인내심을 가지고 친절하게 일을 가르쳐줄 확률이 아주 낮기 때문이다. 신입사원뿐 아니다. 많은 경력이 쌓여도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건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90살까지 산다면, 30년은 일을 가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나머지 30년은 일을 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으려 하고, 나머지 30년은 일을 반추하거나 일을 마무리하는 시기다.(물론 60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삶의 척추 같은 일에 대해서 우리는 왜 정작 관심도 없고 무지하기까지 한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서 무언가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한다면, 그 아이는 자라 식당을 돌아다니는 서빙 로봇과 일자리를 다퉈야 할 것이다. 채용 면접에서, "이 회사는 이런 문제가 있고, 일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이렇게 변해야 하고요. 이렇게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라고 앞다퉈 말하는 면접자들을 흔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청년들이 늘어나야 기업, 사회, 개인의 미래가 보일 것 같다. 이제부터 진로 교육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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