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 9일은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날이다. 56년 뒤인 1992년 8월 9일은 해방 후 처음으로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날이다. 황영조선수가 금메달을 딴 바로 날은 내게 뜻깊은 날이다.
1992년 8월 9일 아침에 나는 부모님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부산역에 갔다. 군대 입대하는 날이었다. 배웅 나온 20여 명의 친구와 부산역 광장에 둥그렇게 앉았다. 그 시절에 입대하는 사람들은 부산역 광장에 둥그렇게 퍼질러 앉아 술을 마시는 문화가 있었다. 나 어릴 적부터 그런 장면을 보았으니 오래된 문화였다. 625 전쟁 시절부터 그런 문화가 생긴 건 아닐까 싶다. 배웅 시간의 하이라이트는 입대하는 친구를 붙잡아 부산역 분수대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내 발로 분수에 빠지겠다며, 친구들을 두 줄로 세워 놓고, 스스로 달려가 분수로 점프했다.
춘천 가는 기차를 탔고, 춘천 도착 후에 해질 무렵 따라온 후배 두 명과 유명한 춘천 닭갈빗집에 들어갔다. 난생처음 맛본 춘천 닭갈비의 맛은 아직도 뚜렷하다. '모래처럼'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102보충대로 들어갔고, 사흘쯤 머물면서 입고 온 곳을 집으로 보내고, 신체검사하고, 부대 배치 결과를 기다렸다. 102보충대는 배치된 부대에서 신병 훈련을 했다.
사람들은 군대 생활은 실타래에 비유했다. 군 생활 편한 곳에 배치 받는걸 '풀렸다.'라고 표현하고, 힘든 곳에 배치 받는걸 '꼬였다'라고 표현했다. 군 생활도 회사의 일 비슷한 문제해결의 과정인데, 꼬인 실타래와 쉽게 풀리는 실타래로 어떻게 그렇게 적절하게 비유할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102보충대에서 부대 배치를 기다리는 동안 '배만 타지 않으면 된다'라는 말이 떠돌았다. 내가 그 배를 탔다.
102보충대에서 소양강댐까지 60트럭을 타고 이동하니, 선착장에 노예선이라는 인력 수송용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을 부슬부슬 비내리는 날이었다. 배를 탄 채로 소양강을 한참 거슬러 올라갔다. 배에서 내려 다시 60트럭으로 갈아탔다. 북으로 북으로 한참을 달렸다. 커다란 노란 돌에 굵은 검은 색 글자로 새긴 38선이라는 표지를 지났는데도 트럭은 계속 북쪽으로 달렸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한 연병장에 트럭이 멈춰 섰고, 내리자 마자 선착순 뺑뺑이를 세 번 정도 했고, 오르막에 있는 식당까지 오리걸음으로 갔다. 그곳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있는 21사단 65년대 신병 교육대대였다.
훈련소에서 밥을 먹으러 갈 때 식당 스피커에서는 서태지의 '난 알아요'가 울려 나왔다. 군대에서 처음 먹은 밥의 식단은 닭도리탕이었다. 식판 위에는 깍두기와 멸치, 비린내 나는 멀건 국물에 닭살 돋은 닭 가죽 조각 두 개가 둥둥 떠 있었다. 빨리 먹어야 하니 밥을 국에 닭도리탕이라 불리는 베이지색 국에 말았다. 먹기가 거북했다. 이런 음식을 어떻게 앞으로 먹나 걱정스러웠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체력 소모가 많아지니 간도 제대로 안 된 거북한 음식들이 술술 넘어갔다.
한여름에 8주 동안 신병 훈련을 받을 때 항상 소금통을 가지고 다녔다. 땀을 많이 흘리면 염분도 함께 배출되어 쓰러질 수 있다고 했다. 어질어질할 때는 소금을 먹으면 괜찮아졌다. 날이 조금 선선해질 무렵 자대 배치를 받았다. 배치 받은 소대에 들어가니 내무반 관물대에 각각 소대원 이름과 좌우명이 적힌 명판이 있었다. 이등병이 11명이고, 내가 12번째 이등병이었다. 나도 관물대 명판을 만들어야 한다며 고참이 나의 좌우명을 물어보았다. 난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이 자유가 박탈되는 군대에서 살아야 하는 아이러니는 그때가 끝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니 군대의 아이러니는 오히려 단순했다. 쉽게 해석되는 모순이다. 사회는 복잡하게 얽키고설킨 실타래 같다. 너무나 복잡해서 아직 아무도 명쾌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세상과 속한 사회의 실타래를 풀려다가 개인 삶의 실타래나 풀자고 마음을 바꿔보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나의 실타래는 세상의 실타래와 엮여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면 내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명징한 원리지만, 좋은 삶이 무엇인지 저마다 달리 생각하니 실타래는 점점 꼬여간다. 복잡해도 인내심과 희망을 품고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지, 가위로 그냥 잘라 버려야 할 지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싹뚝싹뚝 가위질한다고 해서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