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의 조건은 주고받음이다. 자연 하천은 경계가 없다. 수초, 흙, 식물들이 물과 땅의 경계를 이룬다. 식물의 입과 뿌리에 물이 스며든다. 흙으로 물이 스며든다. 스며들다가 일정한 상태가 되면 물은 멈춘다. 물과 땅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물과 땅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점이지대가 둘의 경계를 이룬다.
국민의 세금을 들여 강과 개천의 경계를 현대식으로 바꾼 장면을 많이 보았다. 10여 년을 전국 구석구석을 다니며 땅과 물의 경계를 콘크리트로 바꾸었거나, 바꾸고 있는 장면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특히 이명박 재임시절에는 오지의 상류 실개천까지 물과 땅의 경계를 콘크리트로 바꾸고 있었다. 물과 땅의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콘크리트 같은 구조물로 경계를 바꾸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물이 줄어들고 물이 썩는다.
맑은 물은 땅과 흙의 상호작용이 만든 결과다. 그릇에 물을 한 그릇 떠서 몇 일, 몇 주만 두면 마실 수 없는 물이 된다. 땅과 물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자연 상태 그대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이나 지하수는 마실 수 있는 좋은 물이 된다. 상호작용은 필터 역할을 해 물을 맑게 만들고, 미내랄을 공급해 건강에 좋은 물을 만든다. 콘크리트 경계는 이 모든 작용을 끝장낸다. 콘크리트와 돌은 똑같다. 자연석으로 경계를 만든 하천도 마찬가지다. 금수강산 대부분의 하천은 세금을 퍼부어 썩게 만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하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도 강과 같다. 나를 지탱하는 땅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사람도 썩는다. 땅에 기어 다니는 벌레, 땅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 땅에서 뿌리내린 수초와 식물, 땅에 의지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와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인간도 물처럼 썩는다. 인간이 썩는다는 것은 자신 속으로 매몰된다는 뜻이다. 오직 나만의 생각, 나만의 방식, 나만의 삶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 그래야 한다는 태도는 자신만 썩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도 썩게 만든다. 세상을 썩게 만든다.
세상과 나의 경계가 콘크리트인지, 보드라운 흙인지 돌아볼 일이다.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로, 물만 남은 물이 아니라, 땅과 상호작용하는 물이 되어야겠다. 오랜 세월 동안 이메일 아이디가 물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썩지 않도록 치수를 잘해야겠다. 세상과 나의 경계는 콘크리트인가? 흙으로 이뤄진 생태계인가? 물을 만들고 떠받치는 건 흙이다. 흙과 물을 나눠야 물도 되고, 흙이 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